부르고뉴 유명 생산자 올드 빈티지 100만병 보관
자연 순응 양조·완벽한 포도알만 골라내 만들어
‘와인 애드보케이트’ 부르고뉴 수석 비평가 출신 로바니
“젊은 세대 부르고뉴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이 사명”
‘부르고뉴의 신’ 앙리 자이에(Henri Jayer)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멘 조르주 루미에(Domaine Georges Roumier)의 본 마르(Bonnes-Mares).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마을의 역사 그 자체인 도멘 드 보귀에(Domaine de Vogüé)의 뮈지니(Musigny). 이처럼 경매 시장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기라성 같은 와인들이 무려 100만 병 이상이나 셀러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1950~1990년 생산된 올드 빈티지라니 상상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집니다. 부르고뉴의 심장 본(Beaune)의 네고시앙이자 도멘 흐무와스네 페르 에 피스(Remoissenet Père & Fils)는 이런 보물 같은 와인들로 가득해 ‘살아있는 부르고뉴 와인 박물관’으로 불린답니다.
◆부르고뉴의 보물창고
흐무와스네는 단순한 네고시앙이 아닙니다. 부르고뉴의 기억을 보관한 하우스로, 전 세계 컬렉터들이 가장 신뢰하는 올드 빈티지 공급처 중 하나로 꼽힙니다. 희귀 올드 빈티지의 성지 흐무와스네의 전설은 1877년 피에르 알프레드 흐무와스네(Pierre-Alfred Remoissenet)가 본 시내 중심에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시작됩니다. 와이너리는 14세기에 지은 건물이라 지금도 셀러에 들어가면 오래된 석조 벽과 아치형 구조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나이테를 만납니다.
초창기 흐무와스네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직접 포도를 재배하기보다는 부르고뉴 전역에서 뛰어난 와인을 사들여 장기 숙성한 뒤 최상의 상태에서 판매하는 네고시앙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희귀 올드 빈티지를 보는 안목이 뛰어나 부르고뉴 애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936년 본 지역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포도밭을 매입해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도멘 형태로도 발전합니다. 단순히 와인을 유통하는 네고시앙을 넘어 자신들의 철학을 담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흐무와스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가문의 마지막 소유주 롤랑 흐무와스네(Roland Remoissenet) 입니다. 그는 약 30년 동안 와이너리를 이끌며 흐무와스네를 부르고뉴 최고의 올드 빈티지 하우스로 성장시킵니다. 당시 많은 생산자들이 와인을 빠르게 시장에 판매했지만, 롤랑은 오히려 셀러에 와인을 축적했습니다. 위대한 부르고뉴는 시간이 지나야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흐무와스네 셀러에는 현재도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생산된 와인이 100만병 이상 보관돼 ‘부르고뉴의 보물창고’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흐무와스네는 2005년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75세가 된 롤랑이 후계자 없이 은퇴를 결정했고, 와이너리는 뉴욕의 금융·부동산 사업가 에드워드 밀스타인(Edward Milstein)과 하워드 밀스타인(Howard Milstein), 메종 루이 자도(Maison Louis Jadot), 토론토 기반의 할펀 엔터프라이즈스(Halpern Enterprises) 컨소시엄에 매각됩니다. 이때 부르고뉴 최대 네고시앙 중 하나인 루이 자도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베르나르 레폴(Bernard Repolt),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가 발간하는 와인 매체 ‘와인 어드보킷(The Wine Advocate)’에서 부르고뉴 와인 비평을 담당했던 피에르-앙투안 로바니(Pierre-Antoine Rovani)가 경영에 참여합니다. 또 여성 와인메이커 클로디 조바르(Claudie Jobard)가 와인 양조를 진두지휘하며 바이오다이나믹 농법 등을 도입해 흐무와스네의 현대적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클로디는 메종 조셉 드루앵(Joseph Drouhin)의 수석 양조가로 30년(1976~2006) 동안 활약하며 도멘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여성 와인메이커 로랑스 조바르(Laurence Jobard)의 딸입니다.
◆네고시앙에서 도멘으로
흐무와스네를 이끌고 있는 로바니 회장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흐무와스네 와인은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전직 와인 비평가였던 그에게는 남다른 무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와이너리 셀러를 마음껏 드나들며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많은 셀러를 돌아다니다 마침내 하나의 진리에 도달합니다. “최고의 와인 생산자들은 결국 모두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더군요. 왜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흐무와스네에 합류한 이후 세계 최고의 셀러에서 배운 교훈을 그대로 이곳에 적용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와이너리가 포도밭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할 때는 고작 2ha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밭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끊임없이 좋은 포도밭을 찾아 사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25ha를 넘어섰습니다. 로바니는 이 과정을 ‘사냥(hunting)’이라고 표현합니다. 본에는 마르코네(Marconnets), 브레상드(Bressandes), 그레브(Grèves) 등 뛰어난 프리미에 크뤼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뉘 생 조르주(Nuits-Saint-Georges)에는 프리미에 크뤼 5개와 그랑 크뤼(Grand Cru) 1개, 다수의 빌라쥐(Village) 포도밭을 포함해 쥬브레 샹베르탱(Gevrey-Chambertin), 부조(Vougeot) 등 코트 드 뉘(Côte de Nuits)의 핵심 지역에도 두루 포도밭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2016년에는 쇼레이 레 본(Chorey-lès-Beaune)의 와이너리를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더욱 넓혔고, 이를 기점으로 페르낭 베르줄레스(Pernand-Vergelesses),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네고시앙이지만 도멘으로서의 존재감도 강화합니다.
일부 포도를 구매하지만 원칙은 분명합니다. “포도 혹은 발효 전 머스트(must)는 구매하지만, 완성된 와인은 절대 사오지 않습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자체 소유 포도밭 비중이 낮아 구매 포도 비율이 높지만, 레드 와인은 부르고뉴 루즈와 상볼 뮈지니(Chambolle-Musigny)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직접 재배한 포도로 만듭니다. 화이트와 레드의 생산 비율은 거의 50대 50이고, 딱 하나의 오렌지 와인도 만듭니다.”
◆‘마리나라’ 토마토 소스를 만들듯
로바니가 와인 양조 철학을 설명하며 꺼내든 단어는 뜻밖에도 ‘마리나라(Marinara)’입니다. 이탈리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드는 바로 그 토마토 소스 말이죠. “이탈리아 할머니에게 마리나라 소스 만드는 법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합니다. 우선 산 마르자노(San Marzano)처럼 최고의 산지에서 토마토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흠집 있는 것, 살짝 상한 것, 완벽하지 않은 것은 모조리 골라냅니다. 줄기는 떼어내고, 마늘도 바질도 아무것도 넣지 않습니다. 오직 토마토만, 토마토 스스로 말하게 두는 겁니다. 흐무와스네 양조 철학도 이와 같습니다. 소팅 테이블 2개에 10명씩, 총 40명을 배치해 눈을 부릅뜨고 최상의 포도만 골라냅니다.”
와인메이커 클로디는 이처럼 철저하게 선별한 포도로 인위적 개입 없이 와인을 만듭니다. “완벽한 포도알만 발효조에 넣고 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표현하게 두는 거죠.” 말로락틱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사과산을 젖산으로 전환하는 2차 발효) 역시 같은 철학입니다. 말로락틱을 억제하려면 이산화황을 많이 쓰거나 필터 작업을 강하게 거쳐야 하는데, 흐무와스네는 이런 인위적 개입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말로락틱을 막으면 피니시가 뚝 잘립니다. 말산(malic acid)은 날카롭거든요. 산도 조정을 위해 주석산(tartaric acid)을 첨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에 순응할 때 비로소 피니시가 부드럽게 길게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재치 있는 비유 하나를 덧붙입니다. “섹시하고 아름다운 배우 셀마 헤이엑(Salma Hayek)이 들어와 한껏 칭찬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칼을 꽂는다면, 내가 기억할 건 그 칭찬이 아니라 바로 그 칼입니다. 와인도 똑같습니다. 피니시가 전부입니다.” 영어에는 ‘와인을 만든다(make wine)’는 표현이 있지만, 프랑스어에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프랑스어에서 와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빚어집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기려 들죠. 산도를 조정하고, 말로락틱을 막고, 이것저것 덧붙이며 자신이 와인을 만든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자연이 스스로 완성하게 두었을 때, 비로소 50년을 넘어 살아남는 와인이 탄생합니다. 흐무와스네 쥬브레 샹베르탱 2020 빈티지는 빌라쥐 와인이지만, 2070년에 드셔도 됩니다. 50년 뒤에 저는 없겠지만 조카들은 이 와인을 즐기고 있겠죠.”
◆아상블라주의 미학
흐무와스네가 부르고뉴의 다른 도멘과 차별화되는 대목 중 하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블렌딩)’입니다. 부르고뉴는 전통적으로 각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을 따로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흐무와스네는 빌라쥐 등급 와인에서만큼은 다양한 파셀(Parcelle·소구획 포도밭)을 자유롭게 블렌딩해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들어냅니다. “북부 론 에르미타쥐(Hermitage)의 폴 자블레 에네(Paul Jaboulet Aîné)가 여러 파셀을 블렌딩해 최고의 떼루아를 표현하듯, 보르도의 샤토 라투르(Château Latour)나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가 각 파셀을 엄선해 자신들의 시그니처를 구축하듯, 우리도 부르고뉴 빌라쥐 와인에서만큼은 아상블라주를 마음껏 즐깁니다. 고지대 파셀은 신선한 산도를, 경사 아래 점토질 파셀은 풍부한 바디와 관능적인 질감을 줍니다. 각 파셀이 어택, 미드팔렛, 피니시를 나눠 담당하는 셈이죠. 조각들의 합이 각 조각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문제는 빈티지가 어려운 해입니다. 2021 빈티지가 바로 그랬습니다. 로바니는 셀러 사진을 보여주며 배럴들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부르고뉴에서는 배럴 안에 와인이 들어 있으면 앞면에 와인 이름을 표기하는 관행이 있는데, 이름이 없는 배럴은 곧 빈 배럴이라는 뜻이죠. 생산량이 워낙 적었던 2021년은 물론이고, 2024년과 2025년 빈티지도 마찬가지로 셀러에 빈 배럴이 즐비합니다. 좋은 조각이 충분하지 않아 아상블라주를 완성하지 못한 와인은 과감히 벌크 시장에 팔아넘깁니다. 부르고뉴 루즈의 경우 매년 생산한 배럴의 절반가량을 그렇게 처리합니다. 돈은 거의 못 벌지만, 흐무와스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와인은 내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그랑 크뤼 뮈지니로 흐무와스네를 평가하지 마세요. 그 땅은 워낙 위대해서 누가 만들어도 훌륭한 와인이 나옵니다. 흐무와스네를 평가하려면 부르고뉴 빌라쥐 와인을 마셔 보세요.”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마시며 살아온 평론가가 정작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으로는 가장 낮은 등급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 역설 속에 흐무와스네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흐무와스네 부르고뉴 블랑 르노메(Remoissenet Bourgogne Blanc Renommée) 2021
흐무와스네의 얼굴이자 입문 화이트입니다. 부르고뉴 각지의 파셀에서 온 샤르도네(Chardonnay)를 아상블라주해서 만드는 이 와인은 역설적으로 만들기 가장 까다로운 와인 중 하나입니다. 좋은 조각들이 충분히 모여야 하나의 훌륭한 퍼즐이 완성되기 때문이죠. 2021 빈티지는 생산량이 극히 적었지만, 로바니는 “적게 만들었지만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고지대 파셀의 생기 있는 산도와 경사 아래 파셀의 풍성한 질감이 어우러져 단일 포도밭 와인에서는 얻기 어려운 복합미를 선사합니다. 잘 익은 시트러스와 흰 꽃의 우아한 아로마, 크리미한 텍스처와 길고 깨끗한 피니시가 인상적입니다.
▶흐무와스네 사비니 레 본 블랑(Remoissenet Savigny-lès-Beaune Blanc) 2020
사비니 레 본은 원래 레드 와인으로 더 유명한 빌라쥐입니다. 화이트는 그야말로 희귀 아이템이죠. 흐무와스네가 이 와인을 만들게 된 건 한 고령 농부와의 인연 덕분입니다. 이미 사비니 레 본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던 흐무와스네에게 그 농부가 찾아와 자신의 고지대 밭 과실을 사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직접 가보니 화이트 와인을 위한 고지대 파셀로는 더할 나위 없는 자리였습니다. 흐무와스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까지 담당하지만, 땅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도멘(Domaine) 명칭을 붙일 수 없어 네고시앙 와인으로 출시합니다. 황금빛 잔에서 잘 익은 사과와 헤이즐넛, 은은한 버터향이 피어오르고, 둥글게 정돈된 산도와 풍부한 텍스처가 길고 우아한 여운으로 이어집니다.
▶흐무와스네 부르고뉴 루즈 르노메(Remoissenet Bourgogne Rouge Renommée) 2022
로바니가 스스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와인”이라 부르는 엔트리급 피노 누아(Pinot Noir)입니다. 자가 포도와 구매 포도를 섞어 만드는데, 모든 배럴을 따로 발효·숙성한 뒤 아상블라주를 진행합니다. 이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배럴은 절반이라도 벌크 시장에 과감히 팔아넘깁니다. 돈은 거의 못 벌지만, 이 와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슈퍼 메가 부자들은 그랑 크뤼만 찾습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젊은이들이 이 와인을 마시며 부르고뉴와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부르고뉴 땅값이 워낙 비싸 엔트리 와인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흐무와스네는 가격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려 애씁니다.” 코에 갖다 대는 순간, 세상에 딱 한 곳 부르고뉴에서만 맡을 수 있는 야생 딸기와 촉촉한 흙냄새가 올라옵니다. 실키한 탄닌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흘러내리고, 유혹적인 텍스처가 오래도록 남습니다. 부르고뉴 레드의 정석 같은 아로마, 부르고뉴 입문자라면 이 한 잔으로 첫사랑에 빠지기 딱 좋습니다.
▶흐무와스네 페르낭 베르줄레스 프리미에 크뤼 앙 카라두 루즈(Remoissenet Pernand-Vergelesses 1er Cru En Caradeux Rouge) 2019
순수한 석회암(limestone) 위에 심은 고지대 피노 누아입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트랙터도, 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특수 제작된 소형 탱크 모양의 기계를 사람이 직접 끌고 한 줄 한 줄 올라가야 하는 극단적인 포도밭이죠. 점토가 전혀 없는 순수 석회암 토양 덕분에 산도가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 있습니다. 로바니는 “와이너리 이름을 흐무와스네 대신 세덕시옹(Séduction·유혹)으로 바꾸고 싶다”고 할 만큼 매혹적인 와인입니다. 레드 베리와 제비꽃의 섬세한 아로마, 높은 산도가 와인 전체를 팽팽하게 잡아주면서도 잘 익은 과실의 풍성함이 공존합니다. 로바니는 한국에서 먹은 돼지 삼겹살·갈빗살과 완벽한 페어링을 보였다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고지대 피노 누아의 높은 산도가 지방을 완벽하게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달콤한 양념 갈비는 사양이랍니다.
▶흐무와스네 쥬브레 샹베르탱(Remoissenet Gevrey-Chambertin) 2020
흐무와스네는 쥬브레 샹베르탱 마을 전역에 걸쳐 다양한 파셀을 조금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고지대 파셀, 저지대 파셀, 다양한 토양과 경사면에서 자란 포도들을 섞어 만드는 이 와인은 어느 파셀은 미드팔렛을 책임지고 어느 파셀은 긴 여운을 더하며 각자의 역할을 나눠 맡습니다. 파셀마다 포도 숙성 시기가 달라 수확도 세 차례에 나눠 진행합니다. 각 수확 시기에 맞춰 발효조도 따로 운영합니다. 비용이 훨씬 더 들고 번거롭지만, 각 파셀이 최상의 상태일 때 수확해야 최고의 와인이 나온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짙은 루비색 잔에서 잘 익은 검붉은 과일과 삼나무, 대지의 향이 깊고 풍성하게 올라옵니다. 촘촘하면서도 실키한 탄닌이 단단히 받쳐주고,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여운이 한참을 머뭅니다. 빌라쥐 등급이지만 로바니는 “부르고뉴 최고의 빈티지 중 하나로 꼽히는 2020년의 힘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2070년에 드셔도 좋습니다”라고 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