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2명 중 1명 이상이 원치 않지만, 자녀 사정 때문에 돌봐줘야 하는 '비자발적 돌봄'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여성 노인의 돌봄 부담과 건강 악화가 남성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8일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과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내용의 '노인의 손자녀 돌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53.3%는 본인이 원하지 않지만, 자녀의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돌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러한 부담은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졌는데, 비자발적 돌봄을 경험했다는 여성 응답 비율은 57.5%로 남성(44.6%)보다 12.9%포인트(p) 높았다.
손자녀뿐 아니라 배우자 등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함께 돌보는 '다중 돌봄' 부담을 겪는다는 응답도 51.1%에 달했다.
이 비율 역시 여성(56.4%)이 남성(40.1%)보다 높게 나타났다.
조부모 돌봄이 필요한 이유로는 부모의 긴 노동시간과 가족 돌봄을 우선시하는 가치관, 사교육 필요 등이 꼽혔다.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추가적인 가족 돌봄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손자녀 돌봄이 가족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도 많았다.
응답자의 81.9%는 손자녀와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답했고, 68.8%는 손자녀 부모와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손자녀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남성(73.6%)이 여성(66.5%)보다 높았다.
반면 신체적·정신적 부담도 적지 않았다.
손자녀 돌봄 이후 육체적 피로감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73.7%, 정신적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늘었다는 응답은 60.4%였다.
기존 질환이나 통증이 심해졌다는 응답도 47.8%에 달했다. 연구원은 이러한 부정적 변화가 여성 노인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응답자의 46.8%는 손자녀 돌봄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은 49.0%로 남성(42.5%)보다 높았고, 특히 0∼1세 손자녀를 돌보는 여성 노인의 경우 54.7%가 돌봄 중단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돌봄 중단을 고려한 이유로는 '손자녀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쳐서'가 46.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12.1%), '건강이 나빠져서'(10.8%) 순이었다.
연구원은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가 돌봄 중단 고려 이유의 69.6%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마경희 선임연구위원은 "조부모 돌봄은 많은 가정의 돌봄 공백을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부모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조부모 돌봄에 의존하기보다 부모가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구조와 관행을 개선하고 공적 돌봄의 질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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