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에 담긴 1억 6000만년 전 '쥐라기 바다' 샤블리를 마시다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를 가다 ①샤블리>

 

2년 마다 열리는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주요 산지 총망라 부르고뉴 최대 와인 축제

 

먼 옛날 바다였던 샤블리 굴껍질 화석 가득

 

석화 등 다양한 해산물과 궁극의 마리아주 

 

샤블리 그랑크뤼 레 클로 전망대에서 본 포도밭과 마을 전경. 최현태 기자
샤블리 마을 조형물. 최현태 기자

어머니 품처럼 부드럽게 굽이치는 언덕의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포도나무. 산전수전 다 겪은 이의 주름진 이마처럼 깊게 패고 갈라진 몸통의 올드 바인은 비도 잘 오지 않는 자갈투성이 땅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척박한 땅이라야 살아남기 위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깊이, 단단히 뿌리내리는 법. 사람도 그렇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견딜수록 마음의 근육이 더 두터워지니까. 오래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지친 삶에 위안을 주는 샤블리 그랑크뤼 언덕에 서서 인생의 길을 생각합니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소연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소연 기자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포스터.

◆부르고뉴에서 찾은 인생

 

2018년 개봉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프랑스어 원제 우리를 이어주는 것·Ce qui nous lie, 영어 원제 부르고뉴로의 귀환·Back to Burgundy)’은 프랑스 와인의 심장, 부르고뉴 포도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잘 담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사이드웨이(Sideway)’ ‘와인 미라클(Wine Miracle)’,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 ‘언더 더 투스칸 선(Under The Tuscan Sun)’ 등 와인을 좋아하신다면 반드시 보셔야 할 영화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주로 레드는 피노 누아(Pinot Noir), 화이트는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듭니다. 와인 산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샤블리 & 그랑 오세루아(Chablis & Grand Auxerrois), 꼬뜨 드 뉘(Côte de Nuits),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 꼬뜨 샬로네즈(Côte Chalonnaise), 마콩(Mâconnais) 등 5곳입니다.

 

부르고뉴 전체 와인산지. BIVB
샤블리&옥세루아 산지. 샤블리와인협회

프랑스 부르고뉴 최북단 와인 산지 샤블리에서 인생을 찾아 떠나는 와인 여행을 시작합니다. 작은 마을로 들어서면 나무 골조를 외벽에 노출시키는 ‘콜롱바주(Colombage)’ 양식 건물들이 늘어서 동화 같은 풍경을 선사합니다. 마을 중심을 흐르는 맑고 깨끗한 세렝(Serein)강가에는 예쁜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여행자를 반깁니다.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선 여행자들이 한낮의 햇살을 즐기며 화이트 와인을 즐깁니다.  저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높은 언덕은 그랑크뤼 포도밭. 그중 레 끌로(Les Clos) 전망대에 오르자 알록달록한 마을과 포도밭이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정한 하늘 아래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입니다. 레 클로 전망대에 반원형으로 만든 마을 지도에는 주요 포도밭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네요. 

 

샤블리 마을. 최현태 기자
샤블리 마을  중심을 흐르는 세렝강. 최현태 기자

전망 좋은 벤치에 앉아 샤블리 와인 한병을 오픈합니다. 눈을 감고 샤블리 와인이 담긴 잔을 코에 대면 바다 냄새가 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160km, 부르고뉴 중심 마을 본에서도 북쪽으로 140km나 떨어진 이 언덕에는 파도도, 갈매기도, 짠내 나는 바람도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와인 한 모금이 입 안에 퍼지는 순간, 분명히 바다가 느껴집니다. 부싯돌 같은 미네랄과 짱짱한 산도라니. 사실 이 땅은 까마득한 옛날 바다의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래서 샤블리 마을은 굴 껍질과 조개 화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키메르지앙(Kimmeridgian)’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그러니 1억6000만년 전 쥐라기 바다가 남긴 선물이 잔 안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샤블리 그랑크뤼 레 클로 전망대. 최현태 기자
샤블리 그랑크뤼 레 클로 포도밭에서 본 샤블리 풍경. 최현태 기자
샤블리 키메르지앙 토양. 최현태 기자

주로 화이트 품종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샤블리는 사실 부르고뉴 3대 화이트 산지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몽라셰(Montrachet), 뫼르소(Meursault)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 늘 조연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럼에도 작고 하얀 봄꽃처럼 은근한 매력이 있어 한번 마시면 잊히지 않습니다. 차갑게 벼린 듯한 산도, 젖은 석회암과 조개껍질을 연상시키는 미네랄,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곧게 뻗는 순수한 과실미가 어우러져 화려함 대신 맑고 긴 여운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샤블리의 진짜 매력입니다. 특히 바다였던 토양에서 자란 포도의 특성을 혀와 코가 정확하게 감지해 해산물과 궁극의 마리아주를 선사합니다. ‘샤블리+석화’가 ‘국룰’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샤블리 그랑크뤼 레 클로 포도밭 키메르지앙 토양. 최현태 기자
샤블리 그랑크뤼 올드바인. 최현태 기자

특히 샤블리의 미네랄감은 석회질, 젖은 돌, 조개껍질, 바닷바람 같은 느낌으로 와인 자체가 이미 ‘차가운 바다 느낌’을 일부 지녀 굴이나 조개류와 만나면 향의 방향성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샤블리는 대체로 산도가 매우 높아 해산물의 지방과 아미노산 풍미를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특히 굴, 조개, 새우, 게, 흰살생선은 입안에 약간의 요오드 향, 단백질 잔향, 염분감을 남기는데 샤블리의 직선적인 산도가 이를 씻어내며 다음 한 입을 더 신선하게 만듭니다.

 

다만, 샤블리 그랑크뤼는 요즘 오크 숙성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오크향은 해산물의 비린내를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무턱대고 석화나 신선한 해산물에 샤블리를 곁들이시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크 숙성을 거의 하지 않는 저렴한 쁘띠 샤블리나 기본급 샤블리가 더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해산물에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나 그랑크뤼를 페어링한다면 여러 해 사용한 중성 오크로 만들거나 새 오크 비중이 아주 작은 샤블리를 선택하면 됩니다. 

 

샤블리 다목적 전시장 살 르 키메리지앙. 최현태 기자
도멘 펭송 샤블리 그랑크 레 클로. 최현태
도멘 비요 시몽. 최현태 기자

◆샤블리 그랑크뤼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는 매 대회마다 최북단 산지 샤블리를 시작으로 성대한 행사의 서막을 엽니다. 마을의 다목적 전시장 살 르 키메리지앙(Salle le Kimmeridgien)으로 들어서면 시끌벅적한 활기가 느껴집니다. 부르고뉴 최대의 와인 축제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Grands Jours de Bourgogne)’ 첫날 행사인 샤블리 & 그랑 오세루아(Chablis&Grand Auxerrois)에 참여한 158개 생산자가 바이어 등을 상대로 자신의 와인을 열띠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도멘 롱-드파키(Domaine Long-Depaquit), 도멘 세르뱅(Domaine Servin), 도멘 장 위그 에 기옘 구아조(Domaine Jean-Hugues et Guilhem Goisot), 도멘 크리스티앙 모로 페르 에 피스(Domaine Christian Moreau Père & Fils), 도멘 장 콜레 에 피스(Domaine Jean Collet & Fils), 도멘 브리뇨(Domaine Vrignaud), 도멘 팽송 프레르(Domaine Pinson Frères), 도멘 크리스티앙 모로 에 피스(Domaine Christian Moreau Père et Fils), 도멘 자비에 쥘리앵(Domaine Xavier Julien), 도멘 비요 시몽(Domaine Billaud-Simon) 등 입니다.

 

도멘 세르뱅. 최현태 기자
도멘 크리스티앙 모로 에 피스. 최현태 기자
도멘 자비에 쥘리앵. 최현태 기자
샤블리 그랑크뤼 7개 포도밭. 샤블리와인협회

샤블리 4개 AOC 와인들이 총출동했는데 그랑크뤼 와인들도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샤블리를 남북으로 흐르는 세렝강 우안에 남향을 살짝 바라보는 언덕 위쪽에 샤블리 최고 밭인 그랑크뤼가 몰려 있습니다. 포도밭 지도에서 보면 왕관 모양처럼 보입니다. 세렝강의 반사되는 빛이 일조량을 더해 포도를 잘 익게 도와줍니다. 샤블리 그랑크뤼 AOC는 한 개이지만 모두 7개 끌리마로 구성돼 레이블에 밭 이름을 표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끌리마가 레 끌로(Les Clos)로 생산량이 가장 많고 그르누이(Grenouilles), 부그로(Bougros), 프뢰즈(Preuses), 보데지르(Vaudésir), 발뮈르(Valmur), 블랑쇼(Blanchot)로 샤블리 그랑크뤼가 구성됩니다. 그르누이 포도밭의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개구리들’이란 뜻으로 세렌강과 가장 가가까운 포도밭인데 인근 집들의 조명이 켜지면 개구리들이 강가로 올라와서 이럼 이름을 얻었습니다.

 

알베르 비쇼 마띠유 망즈노(Matthieu Mangenot) 기술 총괄 디렉터. 최현태 기자
알베르 비쇼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 최현태 기자

◆샤블리의 심장을 지키는 수호자 도멘 롱 드파키

 

알베르 비쇼(Albert Bichot)가 소유한 도멘 롱-드파키(Domaine Long-Depaquit)는 샤블리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51ha)을 자랑하는 도멘입니다. 알베르 비쇼는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부르고뉴 대형 메종으로, 샤블리부터 보졸레까지 부르고뉴 전역에 6개의 도멘을 보유한 유일한 메종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멘 롱-드파키는 샤블리의 정통성과 떼루아를 가장 충실하게 병 안에 담아내는 생산자로 손꼽힙니다. 블랑쇼, 보데지르, 레 끌로 등 그랑 크뤼 포도밭을 두루 보유한 도멘 롱-드파키의 와인들은 샤블리의 상징인 키메리지안 석회질 토양이 빚어내는 특유의 미네랄리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포도는 전량 손으로 수확하며,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해 포도밭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도멘 롱-드파키의 철학입니다.

 

도멘 롱 드파키 모노폴 무똔느. 인스타그램

특히 ‘제8의 그랑 크뤼’로 공식 인정받아 레이블에 그랑크뤼로 표기할 수 있는 모노폴 무똔느(Moutonne) 2.45ha를 통째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무똔느는 그랑크뤼 보데지르(Vaudésir·95%)와 레 프뢰즈(Les Preuses·5%)에 걸쳐 있으며 평균 수령은 40년입니다. 워낙 품질이 뛰어나고 다른 그랑크뤼 구별되는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과거 폰티니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소유했던 이 포도밭은 샤블리의 그랑 크뤼 중에서도 중심부에 자리한 자연적인 원형 극장 형태의 경사면 안쪽에 위치합니다. 남향~남동향의 지형 덕분에 일조량이 뛰어납니다. 포도밭을 가로지는 담장 아래쪽 구간에서는 풍부하고 구조감 있는 포도가, 위쪽 구간에서는 꽃 향과 생기발랄한 산미를 지닌 포도가 생산됩니다. 제스트, 라임, 감귤, 자몽, 복숭아향에 자스민, 바이올렛꽃향이 더해지며 습한 부서진 암석과 솔티한 미네랄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미세한 오크 터치, 활기찬 산미도 잘 어우러집니다. 스틸 탱크 75%, 1~5년 사용한 오크통 25%에서 10개월 숙성하고 이후 6개월동안 스틸 탱크에서 추가 숙성합니다. 섬세하게 조리한 생선, 랍스터, 바닷가재, 구운 또는 조리한 가금류와 흰살육, 크미리안 소스에 모렐버섯을 넣어 조리한 치킨과 잘 어울립니다.

 

롱 드파키 샤블리. 인스타그램

◆블랑쇼 vs 보데지르

 

샤블리 그랑크뤼 7개의 보석 중에서 도멘 롱 드파키가 빚는 블랑쇼와 보데지르는 샤블리 그랑 크뤼의 양극단을 완벽하게 대변합니다. 동쪽의 블랑쇼는 새벽 안개처럼 섬세하고, 서쪽의 보데지르는 정오의 태양처럼 화려합니다. 두 와인을 함께 테이스팅하는 것은 샤블리라는 한 작품을 두 개의 전혀 다른 악장으로 감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알베르 비쇼 와인은 금양인터내셔날이 수입합니다.

 

▶도멘 롱 드파키 블랑쇼

 

새벽 이슬 같은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샤블리 그랑 크뤼 언덕의 가장 동쪽 끝, 블랑쇼 포도밭은 마치 가장 늦게 잠든 사람처럼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맞이합니다. 서쪽 포도밭들이 아직 그늘 속에 잠들어 있을 때, 블랑쇼의 포도나무들은 여명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 천천히 깨어납니다. 이 섬세한 일조 패턴이 블랑쇼를 샤블리 그랑 크뤼 7인방 중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토양은 키메리지안 석회질에 화강암 성분이 더해진 점토질입니다. 6500만년 전 쥐라기 시대 굴, 달팽이, 작은 해양 생물의 화석이 켜켜이 쌓인 이 특별한 석회암 토양이 블랑쇼의 날카롭고 정교한 미네랄리티를 만들어냅니다. 포도는 전량 손으로 수확하며, 70%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나머지 30%는 3~5년 된 중고 오크 배럴에서 발효합니다. 이후 리(Lees·효모 앙금)와 함께 약 10개월간 숙성한 뒤, 탱크에서 6개월간 추가 안정화 과정을 거쳐 병에 담깁니다.

 

도멘 롱 드파키 전경. 홈페이지

잔에 따르자마자 백합과 장미의 정교한 꽃 아로마가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향을 들이키면 잘 익은 사과, 배, 복숭아의 과실 향이 층층이 펼쳐지며 향긋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싯돌이나 흑연 같은 스모키한 미네랄리티가 피어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샤블리 마니아들이 ‘샤블리의 영혼’이라 부르는 그 향입니다. 입안에서는 기대 이상의 풍성함이 펼쳐집니다. 바디감이 풍부하면서도 유연하고, 산도는 자극적이지 않고 비단결처럼 매끄럽게 녹아듭니다. 와인을 삼키고 난 뒤, 피니시에서 바다의 요오드 향과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기분 좋게 길게 지속됩니다.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처럼 섬세하고 세련된 여운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해산물 요리, 굴, 가리비, 섬세하게 조리한 흰살 생선과 환상적인 궁합을 이룹니다.

 

도멘 롱 드파키 그랑크뤼 블랑쇼(왼쪽), 보데지르. 최현태 기자

▶도멘 롱 드파키 샤블리 그랑 크뤼 보데지르

 

블랑쇼가 이른 아침의 서정시라면, 보데지르는 장엄한 교향악입니다. 가파른 남향 사면이 자연스럽게 앰피시어터(원형 경기장) 형태를 이루는 보데지르 포도밭은 햇빛을 이중, 삼중으로 모아들입니다. 정면으로 받는 직사광선에 경사면 양쪽에서 반사되는 빛까지 더해지니, 포도는 완벽하게 익고 풍요로워집니다. 도멘 롱-드파키의 대표 모노폴 무토네가 보데지르 안에 95% 걸쳐 있다는 사실이, 이 포도밭의 위대함을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토양은 키메리지안 석회암 말(Marl·이회토)로 점토 함량이 블랑쇼보다 높아 와인에 더욱 강인한 뼈대와 풍성한 볼륨감을 더합니다. 수작업으로 수확한 포도를 낮은 압력에서 천천히 압착하는 과정부터 세심합니다. 75%는 스테인리스 탱크, 25%는 1~5년 된 오크 배럴에서 10개월간 숙성하며, 이후 6개월간 탱크에서 추가 숙성해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도멘 롱 드파키 그랑크뤼 무똔느 위치. 홈페이지

잔에 코를 갖다 대면 레몬, 미라벨 자두, 퀸스(모과) 같은 집중도 높은 과실 향이 화사하게 뻗어 나옵니다. 은방울꽃이나 카모마일 같은 섬세한 꽃향기가 뒤를 받치며, 은은한 꿀, 구운 아몬드, 바닐라의 뉘앙스까지 복합적으로 감지되어 향만으로도 이미 풍성한 식사를 마친 듯한 만족감을 줍니다. 매우 풍만하고 육감적이며 크리미한 질감이 입안을 꽉 채우는 느낌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블랑쇼에 비해 무겁지 않습니다. 탄탄한 구조감 속에 날카롭고 정교한 산도가 와인의 뼈대를 잡아주며, 묵직한 석회질 미네랄리티가 길고 강렬한 여운을 완성합니다. 랍스터, 전복, 크림소스 파스타, 잘 숙성된 콩테 치즈와 함께하면 이 와인이 가진 모든 풍요로움이 폭발적으로 피어납니다.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 회장 라파엘 뒤부아(Raphaël Dubois·오른쪽)와 BIVB 공동 회장인 로랑 들로네(Laurent Delaunay). 최현태 기자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Grands Jours de Bourgogne)’는 와인업계 관계자를 상대로 격년제로 열리는 부르고뉴 최대 와인 축제로 1992년 시작해 올해 18회를 맞이했습니다.부르고뉴 와인 협회(BIVB, Bureau Interprofessionnel des Vins de Bourgogne)가 부르고뉴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고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테루아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3월 9~13일 부르고뉴 여러 중심 마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수입업자, 소믈리에, 저널리스트 등 2700명이 찾았고, 도멘과 메종 1000여 개가 약 6000종의 와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랑 주르 드 부르고뉴 회장 라파엘 뒤부아(Raphaël Dubois)와 BIVB 공동 회장인 로랑 들로네(Laurent Delaunay), 미셸 바로(Michel Barraud)는 본(Beaune) 팔레 데 콩그레(Palais des Congrès)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5년 부르고뉴 와인 시장 현황, 수확, 프랑스 및 수출 시장 실적, 2026년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2025년 수출 현황. BIVB

또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한 자신감 있는 부르고뉴 와인 커뮤니케이션 전략,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 혁신 프로젝트, 미래의 포도밭을 정의하는 혁신적 공동 연구 프로젝트 ‘오리종 오트 꼬뜨(Horizon Hautes Côtes)’ 등도 소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2025년 부르고뉴 와인 수출은 전녀 대비 3.7% 증가했고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 크레망 비중 60∼70%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 상승과 프리미엄 와인 수출이 늘면서 병당 금액이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0년 약 8만5000만 병(75cl 기준), 매출액 8억유로이던 부르고뉴 와인은 2025년 약 7만 5000만병으로 물량은 줄었지만 매출액 16억5000만유로로 두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부르고뉴가 ‘프리미엄화’ 전략에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와인 한 병에 녹아 있는 떼루아, 생산자의 장인 정신, 그리고 희소성 이 세 가지가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랑주르 드 부르고뉴를 가다 ②에서 계속>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