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미국 보네빌 소금사막. 르노의 전설적인 차량 ‘에투알 필랑트’가 시속 300㎞로 질주하며 당시 지상 최고속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별똥별’을 뜻하는 필랑트는 단순한 차명이 아니라 르노 브랜드의 기술과 디자인 유산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당시 항공기 터빈 엔진을 적용한 미래형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에투알 필랑트는 르노의 기술력을 집약한 콘셉트카로 르노의 상징적 모델로 꼽힌다.
르노코리아가 올해 선보인 ‘르노 필랑트’는 그 이름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다시 풀어낸 차량이다. 최근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의 강변을 낀 국도를 달리며 시승한 르노 필랑트는 과거 큰 형님의 이름을 물려받은 차답게 매끄럽고 힘차게 달렸다.
◆낮고 긴 차체… 세단 감성 살린 SUV
◆듀얼모터 주행… 부산공장 기대주
필랑트는 도심에선 전기차처럼 조용하고 가속 구간에선 안정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특히 차선 변경 시 속도를 순간적으로 올릴 때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속 응답력이 뛰어났다.
이 차에는 르노의 업그레이드된 하이브리드 E-Tech 시스템이 탑재됐다. 1.5ℓ 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듀얼 모터를 결합해 시스템 최고출력 250마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르노 코리아는 “필랑트에는 하이브리드 전용 변속 시스템이 적용돼 엔진과 전기모터가 주행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며 “변속 과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주행 감각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곡선 구간에서는 SUV보다 세단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작지 않은 차체에도 차가 노면에 안정적으로 붙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공인 연비는 15.1㎞/ℓ으로 1.64㎾h의 대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도심 구간 운행 시 최대 75%까지 전기 모드로 주행할 수 있다. 필랑트에는 차선 유지 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자율주행 레벨 2 수준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도 적용됐다.
첨단 커넥티비티 기능도 두루 갖췄다. 인공지능(AI) 기반 음성 서비스인 ‘에이닷 오토’는 운전자가 사람과 대화하듯 “에어컨 온도 낮춰줘”, “창문 열어줘”, “근처 맛집 찾아줘’ 같은 말을 하면 차량이 알아듣고 실행한다.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음성만으로 냉난방 장치나 창문, 내비게이션 등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복잡한 상황에서 사람과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순 있으나 OTA(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지속 개선되는 점은 기대할 만한 요소로 꼽힌다. 르노코리아는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소프트웨어정의차(SDV)를 공개할 예정이다.
필랑트가 르노 간판을 단 ‘국산차’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필랑트는 르노코리아의 부산공장에서 생산된다. 르노코리아는 지난 1월21일 부산공장에서 1호차 생산 기념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필랑트는 생산 물량 축소 등 르노코리아가 겪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역점 차로서 사내에선 어둠을 밝히는 ‘여명’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필랑트는 단순 판매 회복을 넘어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서 한국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전략 모델”이라고 말했다.
필랑트 가격은 사양별로 ‘테크노’ 4331만9000원(친환경차 세제 혜택 반영), ‘아이코닉’ 4696만9000원, ‘에스프리 알핀’ 4971만9000원, ‘에스프리 알핀 1955’ 5218만9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