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3월, 미국 신문들은 일제히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정부에 보낸 암호 전보를 1면에 실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독일이 멕시코에 군사 동맹을 제안하며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에 더해 멕시코가 일본을 동맹에 끌어들이도록 중재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있었다.
이로써 그동안 1차 대전에 중립을 유지하던 미국인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영국 정보기관이 1월에 가로챈 이 전보는 외교적 시점을 고려해 3월에 공개되었다. 때마침 바로 직전에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전을 재개했고, 2년 전 루시타니아 격침으로 약 1200명이 희생된 기억이 소환되었다. 분노한 여론 속에서 윌슨 대통령에게 1차 대전 참전은 미국이 오랜 고립주의를 깨고 세계질서를 이끌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1917년 4월, 그는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하며 “세계는 민주주의에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전선에 투입된 대규모의 미군은 1918년 독일의 최후 공세를 저지하고 연합군 공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이 종결되었다. 세계 민주주의 질서 수호라는 미국의 이상은 달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충돌했다. 대내적으로 전쟁은 역설적으로 국내에서 민주주의에 역행했다.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가 선별징병법, 방첩법, 선동법과 같은 여러 법안을 만들며 강력해진 연방정부가 경제와 여론 그리고 개인의 일상까지 통제했고, 일부 국민은 이에 저항하기도 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