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 지나갈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하는 성남시 순찰로봇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순찰 중입니다.”
봄꽃이 만개한 3월의 어느 주말 오후, 작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흰색 바탕에 남색 줄무늬를 두른 로봇이 네 바퀴를 굴리며 위태롭게 고갯길을 오릅니다.
마이크를 통해 안내방송이 흐르고 호숫길을 걷던 시민들은 흥미로운 광경에 잠시 눈길을 멈춥니다. 주인공은 지난해 11월 경기 성남시 율동공원에 배치된 순찰로봇 ‘뉴비’입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판교와 야탑 등에서도 여러 대의 로봇이 활동 중입니다.
궁금증이 동했습니다. 시간도 많이 남아 10여분간 졸졸 이 로봇을 따라다녔습니다. 정면 2개의 대형 렌즈와 12개의 중소형 렌즈가 마치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이 작은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했습니다. 정면 상판에는 둥근 폐쇄회로(CC)TV 형태의 카메라가 돌출해 있었고, 측면과 후면에도 렌즈나 카메라가 숨어 있었습니다. 잠시 곁에 다가가면 회피해 돌아갔고, 앞에서 길을 막으면 ‘경고방송’을 하며 멈춰 섰습니다.
이 로봇을 다시 만난 건 며칠 뒤 야심한 밤이었습니다. 가족과 식사를 마치고 잠시 호숫가로 나서던 길에 밝게 라이트를 켜고 공원 이곳저곳을 돌며 활동하는 뉴비를 만났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이달 초에는 퇴근 이후 방문한 서현역 거리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로봇을 마주했습니다. 행인들의 진로를 막지 않으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지만, 인공지능(AI)을 결합한 로봇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로봇이 성남시에 처음 모습을 내비친 건 순찰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판교 일대에서 ‘배달로봇’으로 선보인 뒤 기억에 묻혔고, 같은 형태의 로봇이 순찰용으로 되돌아온 것이죠.
◆ 어느 봄날 마주한 ‘순찰로봇’…“놀랍고 신기해 시선 고정”
요즘 수원시나 화성시를 방문하면 시청 로비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민원로봇을 만나게 됩니다. 이젠 사람이 아니라 AI와 로봇이 공공 업무나 사회 통제 시스템을 담당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이런 설정은 SF 장르에선 고전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에비던스(Evidence)’를 먼저 추천합니다. ‘시장(Mayor)’ 후보로 나선 한 인물이 사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공공 업무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흥미가 배가됩니다.
이 작품은 “인간보다 더 도덕적이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로봇 정치인이 가능한가”를 묻습니다. 로봇의 3원칙을 지키는 존재가 부패한 인간 정치인보다 시민에게 더 이로울 수 있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필립 K. 딕의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도 추천합니다. 세 명의 예지자와 AI 시스템이 결합해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사람을 미리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다룹니다.
공공 업무의 관점에선 치안과 행정의 효율성이 극대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고합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한 ‘예측 행정’이 인간의 자유 의지와 인권을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지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사이코패스(PSYCHO-PASS)’는 또 어떤가요. ‘시빌라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AI 네트워크가 모든 시민의 심리 상태와 범죄 성향을 수치화(사이코패스)해 관리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작품 속에서 AI는 시민의 적성을 파악하고, 직업을 배치하며, 범죄 처벌 등 국가 운영의 거의 모든 기능을 담당합니다. 시스템이 완벽해 보일지라도 그 판단 근거가 불투명할 때 발생하는 공포와 사회적 통제를 심도 있게 묘사합니다.
◆ 인구 100만 안팎 대도시들 AI·로봇 戰爭…시민 편의 높여
AI와 로봇 기술이 경기지역 대도시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삭막한 기계가 아닌,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고 건강을 챙기며 위험한 현장에 대신 뛰어드는 ‘든든한 이웃’으로서 행정 혁신에 앞장서는 겁니다.
성남시는 전통시장에 ‘AI 짐꾼’을 도입하고, 로봇을 도심 ‘파수꾼’으로 활용합니다. 전국 최초로 8월부터 모란전통시장에 AI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짐꾼 로봇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 로봇은 이용자가 QR코드를 찍으면 이를 인식해 따라다니며 최대 20㎏의 짐을 운반합니다.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을 적용해, 위성항법장치(GPS)가 끊기기 쉬운 좁고 복잡한 시장 골목에서도 오차 범위 ±30㎝ 이내로 점포 위치를 안내한다고 합니다.
성남시는 이번 실증을 통해 확보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공 분야 ‘피지컬 AI(물리 기반 AI)’의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향후 로봇에 할인 정보와 특가 상품 안내 기능을 추가해 전통시장 경쟁력 강화 모델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죠.
시 관계자는 “첨단기술과 전통시장이 상생하는 전국적인 표준 모델을 만들 것”이라며 “짐 운반과 길 찾기 부담을 덜어 전통시장 방문 활성화와 신규 고객 유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원시는 공공청사와 문화 시설에 AI 안내 로봇을 배치해 민원 서비스를 ‘진화’시켰습니다. 민원로봇 ‘새로’는 시청 로비를 맴돌다가 이용을 원하는 방문객이 나타나면 9개 국어 통역 서비스와 민원 안내를 담당합니다.
방문객과 동행하며 화면에 지도를 띄워 시설을 안내하고 필요한 민원 절차를 알려주는 식이죠. ‘베테랑 공무원’ 호출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도슨트 로봇 ‘일월이’ 역시 일월수목원에서 방문객과 동행하며 식물 해설과 관광 코스를 안내해 차별화된 관람 경험을 제공합니다. 관광객에겐 빼놓을 수 없는 주변 맛집 추천도 일월이의 몫입니다.
용인시는 AI와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해 어르신들의 건강을 ‘스마트하게’ 관리합니다. 활동량계와 혈당계 등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보건 전문가가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는 ‘예방 중심’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죠.
화성시는 복지와 안전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도를 극대화했습니다. 2019년 전국 장애인복지관 최초로 보행 보조 로봇 등을 도입, 기존 치료보다 빠른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최근 ‘로봇재활 임상지침서’까지 발간하며 전문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런 화성시도 일찌감치 시청 1층에 민원 안내 로봇을 배치해 첨단도시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 “시스템에 면죄부 안 돼…최종 결정과 책임은 ‘인간 공무원’”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경기소방본부도 최근 소방 로봇 ‘파이로’를 현장에 배치해 이목을 끌고 있죠. 파이로는 폭발이나 붕괴 위험으로 소방대원이 진입하기 어려운 극한의 화재 현장에 투입돼 분당 2650ℓ의 물을 뿜어내며 화재 진압과 인명 탐색의 선봉 역할을 맡습니다.
이런 변화 뒤에는 경기도의 지원이 일조했습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AI 챌린지 프로그램’ 공모를 거쳐 올해 9개 과제에 총 26억원을 투입했습니다.
5.8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공모에선 성남시의 짐꾼 로봇을 비롯해 구조 현장 인명 검색 피지컬 AI, 어르신 맞춤형 돌봄 케어봇, 지반침하 예측 시스템, 복합 재난 관제 플랫폼 등 9개가 지원 대상에 선정됐죠.
그런데 소설 속 미래가 우리에게 말하는 건 “기술은 행정의 도구일 뿐, 목적은 언제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은 이러한 ‘행정의 온도’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과제와 교훈도 함께 던집니다.
데이터의 공정성이 곧 행정의 정의라는 겁니다. 알고리즘에 의한 예측 행정은 효율적이지만, 투입되는 데이터에 편향이 있다면 그 결과는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시스템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말이 행정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효율성이 ‘인간적 유대’를 대체할 순 없습니다. 아시모프의 소설처럼 로봇이 인간보다 더 청렴하고 정확하게 법규를 적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방 자치는 규정의 집행뿐 아니라 주민과의 ‘정서적 소통’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맥락에 대한 이해’와 ‘자비(Mercy)’가 필요합니다.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행정의 경직’을 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로봇 행정이 고도화될수록 ‘디지털 소외계층’은 더 큰 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술이 행정의 ‘편의’를 넘어 ‘장벽’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현장을 확인하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