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중묘지문(衆妙之門)과 생명 순환의 철학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보이지 않는 근원과 보이는 현상이 만나는 자리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그 첫 장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최종 경지를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명명했다. 이는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이다.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집대성한 이 짧은 문구 속에는,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위기를 타개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섭리적 암호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제 이 문이 왜 도교가 예고한 ‘신비로운 어머니(玄牝, 현빈)’의 실체와 연결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눈부신 빛이 쏟아지는 거대한 성소의 문 혹은 우주의 소용돌이 이미지. 도교에서 말하는 ‘중묘지문’은 하늘의 오묘한 진리가 땅의 생명으로 화하는 통로를 상징한다. 이는 인류 구원을 완성할 모성적 실체를 통해 닫혀 있던 생명문의 봉인이 풀릴 것임을 예고하는 철학적 도상이다.

노자는 도의 본질을 설명하며 ‘없음(無)’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있음(有)’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정의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중묘지문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관념 속에만 머물던 진리가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성육신’의 장소다.

 

지난 수천 년의 부성 문명은 주로 ‘있음’의 세계, 즉 가시적인 성취와 분석적인 지식에 몰입해 왔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이 곧 영성의 완성은 아니었다. 도교가 말하는 ‘모든 오묘함(衆妙)’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우주의 생명력을 뜻한다. 이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힘은 아버지의 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다시 낳아주는 어머니의 품에서 나온다. 따라서 중묘지문은 곧 생명의 근원인 ‘현빈지문(玄牝之門)’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 만물의 순환: 귀근(歸根)과 복명(復命) 의 도리

 

도교 철학의 정수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환에 있다. 만물은 '도(道)'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피어나 제각기 자라나지만, 결국 그 끝은 근본인 뿌리로 되돌아가는 귀근(歸根)의 과정이다. 이렇듯 뿌리로 돌아가 비로소 고요를 얻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는 복명(復命)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류 문명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채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위(人爲)가 자연을 거스르고, 경직된 이념이 생명의 역동성을 억압할 때 순환은 멈춘다. 그리고 순환이 멈춘 문명은 그 뿌리부터 서서히 고갈될 뿐이다.

 

그렇다면 멈춰버린 문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어머니의 문'을 통해 끊임없이 흐르는 무구한 사랑의 기운이다. 노자가 현빈(玄牝)을 일컬어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勤)"고 찬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여성적 구원 주체'의 현현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을 넘어, 끊겼던 우주적 생명 순환을 지상에 다시 복원하는 거대한 사건이 된다. 독생녀(獨生女)라는 실체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관념 속에 머물던 '중묘지문(衆妙之門)'은 비로소 인류를 살리는 실제적인 구원의 통로로 화(化)하게 되는 것이다.

 

◆ 천일국(天一國), 생명수가 흐르는 이상의 장(場)

 

이러한 생명 순환의 철학이 안착된 세계를 본 연재에서는 ‘천일국(天一國)’이라 칭해 왔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평화의 터전이자, 만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세계다. 여기서 천일국은 정치적인 국경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하늘의 도(道)가 인간의 정(情)으로 흐르는 ‘생명의 그물망’을 뜻한다.

 

아버지가 씨앗(진리)의 근원이 된다면, 어머니는 그 씨앗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명수를 공급하는 강물과 같다. 중묘지문이 열린다는 것은, 곧 인류가 독생녀의 모성적 심정권을 통해 하늘부모님의 참된 혈통을 이어받고 영원한 생명의 순환 고리에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도교가 아득한 태고적부터 갈망해온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실체적 결실이다.

 

◆ 도(道)의 안착과 문명사적 완성

 

『도덕경』이 예고한 중묘지문은 인류 구원의 마침표를 찍는 ‘어머니의 자리’를 예표한다. 부성 중심의 문명이 쌓아올린 지식의 탑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우리는 다시 생명의 근원인 그 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곳은 정죄와 심판의 문이 아니라, 조건 없는 수용과 치유가 흐르는 자비의 문이다.

 

이제 인류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를 끝내고 지상에 현현한 실체적 현빈을 통해 하늘과 땅의 뿌리인 천지근(天地根)를 회복해야 한다. 우주의 오묘한 진리가 한 여인의 삶과 사랑을 통해 인격화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는 상실했던 본연의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이 신비로운 생명의 문을 통과하는 여정은 곧 인간 본성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순수성을 깨우는 장자의 지혜로 이어진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