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코스피 7000 시대의 멸종위기종

높디높은 진입장벽 앞 청년들
억대 성과급·증시 축포에 허탈
취업과 결혼, 출산은 언감생심
결국 해답은 ‘생존 환경’ 조성

출근 시간, 커피와 간식을 파는 작은 가게. 모두의 시선이 TV 화면에 고정된다. “오늘, 지구 최연소자 디에고 리카르도의 죽음으로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디에고의 나이는 18년 4개월 20일…” 잠깐, 지구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열여덟 살? 뜻밖의 설정에 순간 아득해진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인류가 불임이 된 지구, 디에고는 18년 전 태어난 우리 종의 ‘마지막 아이’였던 것.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걸작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의 섬뜩한 오프닝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인류는 분열과 폭력으로 무너지고 있다. 다음 세대가 없는 세계엔 계승할 가치도,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다. 2024년 그는 역대 최저로 추락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언급하며 “인구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5년에는 역삼각형 인구 피라미드를 공유하며 “1살 아이보다 84세 노인이 더 많은 나라”라고 썼다. 올해 초 대담은 더 싸늘하다. “이 추세라면 한국 인구는 세대마다 70%씩 증발해 3세대 후엔 단 4%만 남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여기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북한이 굳이 침공할 필요도 없다. 그냥 걸어서 넘어가면 그만.” 농담처럼 던진 말이 뼈아프다. 우리가 매달려온 모든 치열함이 무력해진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KBS PD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지구로 돌진하는 혜성 앞에 선 인류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하늘을 보라(Look up)”며 종말을 경고하는 과학자만 마음이 급할 뿐, 정치적 계산에 급급한 정치인,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미디어, 음모론자와 방관자가 뒤섞여 시간을 허비한다. 결말은 파국이다. 비합리적이고 답답하고 어이없지만 묘하게 현실과 닮아있다. “3세대 후엔 4%만 남는다”는 경고 앞에서 우리만 눈 가리고 ‘돈 룩 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한국은 구름 위에 뜬 것 같다. 한류는 거대한 문화 현상이 됐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기술력도 든든하다. 코스피는 7000고지를 넘어섰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동경한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외형만 본다면 단군 이래 가장 화려한 정점을 통과하는 중이다. 그러나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낸다.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올해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67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작년 6계단 떨어진 데 이어 올해 또 9계단 하락했다.

번영은 있되, 모두의 것은 아니다. 집값이 뛰고 코스피가 치솟지만, 자본을 선점한 기성세대에게 철저히 유리한 구조다. SK하이닉스의 수억 원대 성과급, 더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삼성전자 노조 ? 억억 하는 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높디높은 진입장벽 아래 선 청년들은 막막하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쉬었음’을 선택한 청년이 71만명. 최근 한 언론은 ‘쉬었음’ 용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사회적 로그아웃 청년’이란 대체어를 제안했지만, 쉬었음이든 로그아웃이든 거친 현실을 담기엔 여전히 겉돈다. 금수저·흙수저 하던 ‘수저론’을 잇는 신조어는 ‘서민통(痛)’이다. 상승하는 국가 지표와 달리 개인의 삶은 상대적 박탈감의 수렁에 가라앉는다. 코스피 7000이라는 불꽃놀이 뒤로 청년들이 조용히 로그아웃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시스템 종료를 피할 수 있을까.

다시 영화 ‘칠드런 오브 맨’으로 돌아가 보자. 잿빛 거리에는 “가임 검사 거부 행위는 불법”이라는 경고문이 보인다. 18년째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절망 앞에 국가의 조급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래를 꿈꾸기 힘든 현실 앞에 가임 검사가 무슨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척박한 현실을 방관한 채 개인에게 출산의 의무를 묻는 장면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생태학에는 ‘번식 억제(Reproductive Suppression)’라는 개념이 있다. 주변 환경이 척박해지거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동식물은 번식을 중단한다. 가뭄이 극심할 때 식물은 꽃을 피우는 대신 뿌리와 줄기를 보존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먹이가 부족한 환경의 동물은 발정기를 건너뛴다. 이는 생명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이고 논리적인 방어 기제다. 삶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음 세대를 생산하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산율이 0.9명 선을 회복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반가운 신호다. 1990년대 초반, 연간 70만명씩 태어났던 에코붐 세대가 출산 적령기에 접어들며 만들어 낸 소중한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불과 10년 뒤면 부모가 될 세대 자체가 3분의 1 이상 사라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은 길어야 10년이다. 지금의 반등을 추세적 회복으로 안착시키지 못한다면 예고된 소멸은 피하기 어렵다.

결국 해답은 다시 ‘생존의 환경’으로 귀결된다. 척박한 땅에서 꽃 피우기를 거부하는 식물에 번식을 다그치는 일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경쟁의 피로, 낙오의 공포가 삶을 압도하지 않는 토양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K팝 영상 아래 달린 한 누리꾼의 담담한 댓글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멸종위기종이야. 잘 기억해 둬.”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