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닥’ 숯불 위 봄비소리… 강사시절 추억에 젖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가양동 ‘담육’

3년간 열정적으로 수업했던 ‘가양동’
십여년 만에 구경하다 발견한 고깃집

깔끔한 오픈 주방 초벌 구워 손님상에
참숯 향 머금은 삼겹살은 소맥과 단짝

감자장아찌·대파김치 고기 위한 조연
포실한 계란찜 서비스 마음까지 든든
가양대교. 젊은 날 새벽 공기와 함께 수없이 오가던 그 길 위에는 요리사였던 시간과 선생이었던 시간이 함께 남아 있었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가양동은 많이 변해 있었지만, 숯불 위에 익어가는 돼지고기와 뚝배기 계란찜의 온기를 느끼며 그때의 기억을 붙잡아 본다. 한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밤을 새우던 동네에서 오늘은 한가로운 식도락가가 되어 여유를 즐겨본다.

 

‘담육’ 초벌구이 돼 나온 삼겹살.

◆가양대교

28살, 조금 이른 나이에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다. 서울 중랑구 집에서는 정반대인 강서구 쪽에 위치했던 학교는 2시간이 걸려 갈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그 시간은 늘 설렘의 연속이었다. 직장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반복된 일상에 요리하는 즐거움을 잃기도 한다. 방심하는 순간 요리사가 아닌 그저 직장인이 되어버리는데, 학생들을 만나 가르치는 그 시간은 마치 요리를 처음 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모자람 없이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어쩌면 나 또한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호텔 현장에서 일하던 호랑이 선생님으로 기억되려나, 조심스럽게 그 예전을 추억해 본다.요리대회가 있는 5월에는 학교에서 밤새우기가 일쑤였다. 학생들 작품을 지도하고 늦은 밤까지 요리를 만들다 보면 차가 금방 끊겼는데, 택시비를 조금 아끼고자 가양대교 다리 하나를 걸어서 건넜던 기억이 난다. 밤새 차 끊길 일이 많다 보니 결국 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던 때도 그때다. 내 첫 차는 강변북로와 가양대교를 끊임없이 넘어 다녔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가양동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 학교 수업을 3년 정도 했으니 그 젊은 시절에 꽤 기억에 남을 만한 동네인 건 확실하다. 컨설팅 미팅이 끝난 후 오랜만에 동네를 걸어보기로 했다. 가양동은 한강을 끼고 있는 곳 중에서도 유독 강 내음이 많이 느껴지는 동네다. 5월의 봄꽃 내음과 강바람은 종종 표현하기 어려운 설레는 마음이 들게도 만든다.동네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에 걸쳤다. 만원 전철을 탈 바에는 차라리 동네에서 밥을 먹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음식점을 찾는 시간은 설렘의 연속이다. 혼자 먹을 용기가 가득한 나로서는 어떤 메뉴든 상관이 없다. 특히 차를 안 가지고 온 날에는 주류가 옵션으로 추가되기에 설레는 신중함이 더해진다. 가양역과 증미역 사이를 걷다가 근사해 보이는 고기 집을 발견했다. 바로 ‘담육’이다. 평소 노포를 지향하는 필자이지만 서울 시내에선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는 걸 알기에 그날은 주저 없이 깔끔한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담육’ 외관의 모습.

◆숯불의 기억

가게 내부는 굉장히 말끔했다. 정돈된 술잔과 물병이 인상 깊었다. 오픈된 주방에서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열심히 초벌을 하고 있었다. 근엄해 보이는 그 모습에 가득한 신뢰감이 밀려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담육 돼지 반상을 주문했다. 친절한 멘트와 함께 상 가득 반찬들이 차려졌다. 깔끔한 가게와는 다르게 찬들에서는 먹어보지 않아도 느껴질 깊은 세월감이 반겨졌다. 고추채 장아찌와 깻잎, 대파김치 등 모든 찬이 오롯이 고기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 감자장아찌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아삭한 식감 속에 친숙한 전분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상에 숯이 올라왔다. 고기를 굽기 전의 숯은 참 단아하다. 뜨거운 열기는 단순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는 무언의 힘이 담겨 있다. 연탄구이와 참숯, 가스불 모두 각각의 매력이 가득하지만 그중 참숯이 가장 으뜸이다.담육의 고기는 초벌이 되어 나온다. 겉면을 주방에서 강한 불로 익혀 향을 내는데 그 숯향이 참 기가 막히다.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굽는 소리는 마치 봄비 내리는 소리 같다. 이미 초벌로 온도가 어느 정도 올라온 돼지고기는 불판에서 기름진 자태를 풍기며, 활짝 피던 봄꽃이 볕에 그을리듯 짙은 갈색의 향을 입는다.담육의 고기 한입은 절로 미소 짓는 맛이 났다. 혼자 고기를 먹는 날은 소주보다는 소맥이 잘 어울린다. 자주 따라 마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고기에 집중하던 찰나 계란찜이 서비스로 나왔다. 부들부들하고 감칠맛이 도는 이 계란찜은 담육의 시그니처가 아닐 수 없다. 계란찜의 존재감은 마치 긴 마라톤 도중 들이켜는 한 모금의 물처럼 숨을 고르게 하고 혀의 열기를 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양동 담육의 고기는 단순히 맛있다고만 하기에는 더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중간 중간 느껴지는 친절함 속에서 배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득 찼다.

 

담육 돼지 반상.

◆계란과 계란찜

계란은 사람이 가장 오래도록 먹어온 식재료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불과 물만 있다면 누구나 익혀 먹을 수 있었고, 또 그 단순함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든 집집마다 자신만의 계란 요리 레시피가 탄생했다. 한국의 계란찜 역시 그런 음식이다. 조선 시대의 문헌 속에서도 달걀을 찌거나 중탕해 먹는 기록이 등장한다. 특히 궁중에서는 달걀을 체에 곱게 내려 육수나 고기에 섞어 찐 음식인 계란선 같은 요리는 오늘날의 계란찜보다 훨씬 부드러운 형태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폭신한 뚝배기 계란찜은 식당 문화와 함께 발전했다. 멸치 육수나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뜨거운 뚝배기에서 빠르게 끓여내며 부풀리는 방식은 단순한 계란찜 하나에도 우리의 조리 감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계란찜의 가장 큰 매력은 질감이다. 숟가락이 닿는 순간 흔들리는 부드러움은 입안에서는 거의 씹지 않아도 될 만큼 사르르 무너진다. 강한 불에서 만들어지는 거친 기포와 눌어붙은 가장자리조차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맛으로 남는다.

 

 

■전복을 올린 계란 플랑(프랑스식 계란찜)

 

<재료>전복 1마리, 계란 2알, 휘핑크림 50㎖, 정제버터 10㎖, 피시소스 5㎖, 다진 양송이버섯 10g, 다시마 1장, 무 30g, 감태가루 약간

 

<만드는 법>①전복은 다시마와 무를 넣은 물에 약불로 1시간가량 천천히 삶아준 후 식혀준다.②계란 2알과 휘핑크림을 섞어주고 정제버터를 넣어 섞는다. 체에 내려준 후 다진 양송이버섯을 볶아 넣어준다.③ 틀에 넣어 약 80도 중탕에서 15분간 천천히 쪄준다.④계란 플랑 위에 전복 슬라이스를 얹어준 후 전복 삶은 무와 스틱으로 자르고 감태가루를 뿌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