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2.6%로 2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주는 시중 유동성은 중앙은행에 의해서 늘어나지만 정부의 재정정책에 의해서도 증가한다. 이를 재정적 인플레이션 혹은 재정 가격결정이론(FTPL)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중앙은행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하면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아 물가가 안정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앙은행이 독립해도 정부 재정적자가 누적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먼저 경기침체와 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 증가로 재정적자가 늘어난 데 있다. 정부 재정지출이 늘어나게 되면 경기회복으로 실물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르게 된다. 또한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경우 결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면서 통화량이 증발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포퓰리즘도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정부가 현재 재정적자를 미래 세금 인상으로 보전할 것을 국민이 믿을 경우 미래의 세금 인상에 대비해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이른바 리카도의 동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가 작동해 재정적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퓰리즘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될 경우 정부의 부채 상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재정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재정적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은 중앙은행발 인플레이션보다 더 심각하다. 중앙은행의 통화적 인플레이션은 늘어난 유동성이 금융권에서 머물다가 시차를 두고 실물 수요로 전이되어 그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재정지출 증가는 곧바로 실물 수요를 늘어나게 해서 인플레이션 규모와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중 유동성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고 돈의 가치 또한 크게 낮아지고 있다. 이는 환율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으며 주택 가격과 생활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배경은 한국은행의 저금리로 인한 시중 유동성 증가에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확대에도 그 원인이 있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의 진전으로 세수는 구조적으로 감소하는데 재정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제기준인 60%를 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책임져야 할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하면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또한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가 빠른 점과 저성장으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를 고려하면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적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먼저 성장률을 높여서 세수를 늘리고 일자리 창출로 복지 수요를 줄여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감소시켜야 한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 기업 투자가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선심성 지출을 줄이는 등 재정지출을 효율화해 포퓰리즘에서 벗어나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리카도의 동등정리가 작동하도록 재정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회복해야 하며 포퓰리즘 수요의 원인인 부정부패, 인플레이션,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들을 해소시켜야 한다.
재정준칙 제정도 중요하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상한선을 두어 과도한 재정지출을 규제할 수 있도록 재정준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재정지출을 제약하는 재정준칙이 통과되기는 쉽지 않다. 역대 정부가 재정준칙 법제화에 실패한 배경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재정, 통화정책의 협력도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높여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려고 해도 국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재정적자가 확대될 경우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협력해서 시중 유동성을 줄여야 물가와 돈의 가치는 물론 환율과 주택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 최근 경기침체 심화와 복지 수요 증가로 인한 큰 정부 추세로 시중 유동성 증가의 주체가 중앙은행에서 정부로 바뀌고 있다. 정책당국은 재정적 인플레이션 발생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