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지 못한 비극에 마음 고갈 불안한 계약직 ‘가벼운 처우’ [탐사기획-자살예방법, 국가의 책무]

(3회) 사례관리자의 무게
※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은 자살예방법이 명시한 권리와 책임을 알리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응급실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 근무하는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유희태 기자

미선의 자리는 병원 5층 전공의실에 있다. 독서실처럼 다닥다닥 붙은 나무 책상 사이,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기 비좁은 통로 끝 구석.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병원이 내준 자리다. 전공의들의 공간이라 큰소리를 낼 수 없다. 환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면 미선은 서둘러 일어나 통로를 빠져나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길을 오간다.

 

미선은 응급실에 설치된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의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자다.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는 자살 시도자에게 최소 4회의 단기 상담을 제공하고, 지역 자살예방센터 등에 연계하는 일을 한다. 시도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미선의 몫이다.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 제20조에 근거해 2013년 시작한 사업이다. 첫해 21개 병원에서 출발해 올해 5월 95곳으로 늘었다.

10년 전 미선의 첫 업무 공간은 병원 중환자실 한가운데였다. 사방이 병상으로 둘러싸여 환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어느 날, 한 환자의 모니터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던 초록색 선이 한순간 직선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의료진이 급히 침상으로 달려들었다. 의사는 깍지 낀 두 손을 환자의 가슴 위에 얹고 강한 압박을 반복했다. 옆에 선 간호사는 정맥주사 라인을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미선은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미선은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극한의 의료 현장에 섞여 있는 사회복지사라는 자신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주변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미선만 그 자리에 섬처럼 붙박여 있었다. 분주한 의료진을 피해 자살 시도 환자 관리 업무를 이어갔다. 사례관리자에게 사무공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은 있지만, 그 공간의 환경까지는 규정하지 않는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미선의 자리는 중환자실 한가운데에서 전공의실 구석으로 옮겨졌다.

 

미선은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한다. 자살 시도자의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고 추적하는 일은 상담만큼이나 시간이 소요된다. 컴퓨터를 켠 뒤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시스템 ‘스페디스(SPEDIS)’에 접속해 전날 기록을 훑는다. 자살 시도로 내원한 환자 수와 그 옆 상담 동의 여부란에 시선이 길게 머문다. 미선은 모니터 아래에 붙여 둔, 작은 메모지를 바라본 뒤 전공의실을 나선다.

 

‘우리 모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미선의 목적지는 1층 복도 끝에 있는 응급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걷는다. 미선은 응급실에서 자살 시도 환자를 만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872명, 하루 평균 41명꼴이다. 이 수치는 세상을 떠난 사람만 반영한다. 같은 해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자해·자살 시도 환자는 3만915명. 자살 사망자 통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선이 만나는 환자다.

 

삶의 끝에 선 자살 시도자를 붙잡는 자리였지만 정작 사례관리자는 무방비 상태로 현장에 내던져졌다. 미선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정신건강병원에서 1년,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서 3년, 정신보건센터에서 6개월을 근무했다. 그러던 중 한 병원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례관리자로 일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였다.

 

자살 시도자를 만나는 일은 4년6개월의 임상 경력을 쌓은 미선에게도 낯선 영역이었다. 환자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망설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자해하면 안 돼요. 몸이 다 망가져요. 모르셨어요?”

 

“미선 선생, 죽겠다는 사람이 그런 걸 신경 쓰겠어?”

 

환자가 미선을 빤히 보며 답했다. 질문은 번번이 어긋났다. 변증법적 행동치료, 인지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학교에서 배운 상담 기법들은 현장에서는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복지부의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실무자 매뉴얼’과 교육은 각종 돌발 상황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자살 시도자 다수가 상담이나 연계를 거부한 채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재시도로 다시 병원에 왔다. 2024년 전국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방문한 자살 시도자 2만3247명 중 43.6%인 1만141명이 재시도자였다.

 

“오늘은 제발 환자가 없기를….”

 

매일 아침 미선은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3년을 혼자 전전긍긍하던 미선은 결국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일이 쉽지 않은 게 맞다. 언제든지 와라.” 교수는 슈퍼비전을 제안했다. 사례관리 과정에 대해 전문가의 지도와 점검을 받는 교육이었다.

 

약 3년에 걸쳐 서른 번의 교육이 진행됐다. 한 달에 한 번, 미선은 교수와 함께 자신이 놓친 환자 사례에 대해 공부했다. 사례관리자에게 환자를 놓친다는 말은, 그 환자가 재시도 끝에 사망했다는 의미다. 둘은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어떤 신호를 흘려보냈는지 하나씩 되짚어 나갔다. 어두웠던 길 끝에 작은 불빛이 켜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환자들은 미선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미선의 마음에 체념이 쌓여 갔다.

 

5년 차 사례관리자가 되던 해 6월, 미선은 일본의 도쿄자살방지센터로 단기 연수를 떠났다. 오래된 건물 2층 사무실에서 푸근한 인상의 무라 아키코를 만났다. 18년째 자살예방 상담 전화를 받아 온 봉사자였다. 미선은 그에게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봉사자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가 그들의 전화를 받는 마지막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자살을 막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 한마디에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스페디스 입력을 위해 환자의 마음보다 개인정보와 생계 형편을 먼저 물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자살 시도자를 바꾸려 애썼던 자신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몇 번이고 병원을 찾았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미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그것임을 그제야 알았다.

 

미선이 노력해도 모든 내담자가 지역 상담 기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살 시도자에게 기관 연계는 ‘내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과 같다.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의 사후관리 서비스 동의율은 2025년 67.3%다. 그러나 지역 상담 기관으로 연결된 비율은 같은 기간 44%에 그쳤다. 특히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공 동의서에 서명해 달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환자들은 머뭇거렸다. 자신의 자해 이유나 자살 시도가 기록으로 남을까 두려워서였다. 결국 미선이 할 수 있는 일은 설득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미선의 옆 책상은 비어 있다. 한때 미선에게도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금방 자리를 떠났다. 한 동료는 환자와의 만남에서 긴장을 놓지 못해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 다른 동료는 매년 계약 갱신을 앞두고 불안에 떨었다. 서랍이 비워지고 흰 가운이 반납되는 일이 반복됐다.

 

미선은 다시 동료를 찾고 있다. 자살 시도자를 만나 본 고연차 경력자를 바라지만, 예산 앞에서 멈춘다. 센터에 배정된 올해 정부 사업비는 2인 기준 약 1억390만원. 이 안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 연차가 높은 미선의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 자리에는 갓 일을 시작한 저연차 한 사람을 채울 수 있을 뿐이다. 미선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시작했다.

 

인건비를 맞추고 나면 운영비, 공공요금, 사업자 부담금 등 이름조차 낯선 지출 항목들이 남은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업무 장비 구매와 교육 비용을 아껴도 부족해, 프린터 잉크·볼펜 같은 소모품은 사비로 채우기도 한다. 빠듯한 예산 탓에 센터장과 부센터장을 맡은 정신건강의학과와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월 25만원의 정책 직급 수당을 사양하기도 했다.

 

미선이 새 동료를 기다리는 사이 다른 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누군가는 등 떠밀리듯 짐을 쌌다. 3년 차 사례관리자 지영이었다. 지영은 지난해 12월31일 계약이 만료됐다. 사례관리자의 계약 기간은 2년. 현장을 익히고 환자들과 신뢰가 쌓일 즈음 계약은 종료된다. 자살 시도 환자를 다루는 경험이 축적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구조였다. 지난해 전국 93개 센터에 종사하는 사례관리자 243명 중 200명(82%)은 비정규직, 43명은 무기계약직이었다.

 

지영은 센터장의 도움으로 계약 기간보다 1년을 더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뒤, 병원 인사팀은 더 이상의 계약 연장은 어렵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지영만의 일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두 동료 역시 떠나야 했다. 센터는 자살 시도 환자를 돌본 경력자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갔다.

 

지영은 3년 동안 총 350명의 자살 시도자를 만났다.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정보는 지영의 업무용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 대원들이 119구급차에서 환자를 들것으로 옮기고 있다. 유희태 기자 

‘A-01 자살/자해, 박○○(F/87)’

 

‘A-11 자살/자해, 최○○(M/33)’

 

응급실 A구역 1번 침대에 87세 여성 박모씨가 자살 시도나 자해로 이송됐고, 11번 침대에는 33세 남성 최모씨가 같은 이유로 실려 왔다는 뜻이었다.

 

‘A-07 자살/자해, 김○○(F/21)’

 

2023년 처음 만난 스물한 살 은혜는 대학을 자퇴한 상태였다. 반복되는 자해로 지영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은혜를 만나야 했다. 상담실에는 매번 침묵만 흘렀다. 지영은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밖에서 걷자”며 은혜의 손을 잡았다. 먼저 속내를 꺼낸 건 은혜였다. 지영은 다그치지 않았다.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엉켜 있던 은혜의 마음도 조금씩 정리돼 갔다. 어느 날 은혜는 “선생님처럼 흰 가운 입고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던 은혜에게 처음으로 닿고 싶은 미래가 생기고 있었다.

 

자해로 병원을 찾던 은혜의 발걸음도 점차 뜸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이던 상담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다시 석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2024년 은혜가 병원을 마지막으로 찾은 날, 작은 편지 한 통이 지영의 손에 건네졌다. 종이 위에는 ‘선생님과 병원에서 같이 일하고 싶으니 오래 일해 달라’는 눌러 쓴 글씨가 남아 있었다. 지영은 한참 편지를 바라보다가 답장을 적었다.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와.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지영이었다. 지난해 12월, 퇴사 직전 휴가에서 복귀한 날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는 은혜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영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은혜는 “왜 퇴사하시는 거예요?”라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지영은 “집에 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은혜는 늦깎이 간호학과 신입생이 되어 있었다. 은혜를 기다리겠다던 지영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은혜처럼 스스로 삶으로 돌아온 사람은 드물었다. 많은 환자는 지영의 손끝에서 영영 멀어졌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좌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내가 그때 말을 잘못했나.’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까지도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환자가 세상을 떠난 날이면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어느 봄밤 새벽 2시 무렵, 안방 침대에서 잠들어 있던 지영의 남편이 비명을 듣고 눈을 떴다. 옆에서 자던 지영이 “내가 안 했어요”라고 소리쳤다. 잠에서 깬 지영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남편은 지영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전직 자살 시도자 사례관리자가 길거리 의자에 앉아 있다. 이재문 기자

증상이 심해질 때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인근에 있는 한 상담 기관으로 향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청년 대상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었다. 센터를 지원하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도 사례관리자의 정신적 소진을 관리하기 위한 집합 교육이 연 4회 운영된다. 하지만 지영에게 필요한 건 즉각적인 상담이었다.

 

“같은 상담자로서 잘 아시겠지만….”

 

이 말이 상담사의 입에서 나올까 봐 지영은 늘 조마조마했다. 사전 질문지 직업란에는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신원이 들통나면 자신이 내담자가 아니라 다시 상담자가 될 것 같았다. 지영은 업무를 내려놓은 채 앉아 속내를 털어놓고 싶었다. 환자에 관한 고민을 꾸며낸 회사 동료 이야기로 바꿔 풀어놓았다.

 

현재 지영은 지방의 한 공공기관에서 통합사례관리자 업무를 맡고 있다.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대상자를 위해 복지·의료·고용 등 다양한 사회보장서비스를 연계하는 일이다.

 

업무 중 지영의 휴대폰은 수시로 울린다. 그가 떠나온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걸려 오는 전화다.

 

“선생님, 언제까지 제가 다 알려드려야 해요?”

 

지영은 한숨을 쉬었다. 신규로 채용된 사례관리자들은 업무가 막힐 때마다 전임자를 찾았다. 심지어 센터장은 지영에게 돌아올 수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계약직 신분에 다시 몸을 내던지긴 싫었다. 전화를 끊은 지영은 이 구조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미선의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다만 미선은 불안함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환자를 위해 버텨온 시간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에 집중했다.

 

그렇게 전화벨이 울리고, 응급실 호출이 들어오고, 행정 문서가 쌓이는 동안 하루가 저문다. 미선은 다시 전공의실로 돌아온다. 다닥다닥 붙은 책상 사이를 지나, 아침에 비웠던 자리에 앉는다. 통로를 지나는 사이 전공의들이 외부인을 보듯 미선을 힐끗 쳐다본다. 어제 만난 병원 행정 직원이 떠올랐다.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뭐 하는 곳이죠?”

 

미선은 이렇게 되물었다.

 

“벌써 10년이 넘은 곳인데 아직 모르세요?”

 

예전 같았으면 한참을 쏘아붙였을 텐데, 이제는 한 번 되묻고 만다. 미선의 시선이 모니터 아래 메모지에 머문다.

 

‘우리 모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탐사보도1팀=조병욱 팀장, 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 이재문·유희태 기자

편집: 최미숙 기자, 미술: 윤대영 기자

 

자살예방법은 자살 위험에 노출된 국민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를 보장하고,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발견한 국민에게는 구조에 나설 의무를 지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자살의 사전예방과 사후대응 정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를 부과한다.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 권리와 책무 사이의 공백이었다. 여기에 공감한 유족과 사례관리자가 용기를 내 그 공백을 증언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관리자 미선·지영과 자살 시도자 은혜는 모두 가명이다. 은혜 사례는 본인 동의를 받아 사용했다. 사례관리자들의 계약직 신분상 불이익 우려를 고려해 근무지의 식별 정보는 변경했지만 근무 공간의 협소함과 비독립적 환경 등 핵심 사실은 유지했다. 인용된 통계는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와 취재진이 복지부에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편집자주>

 

※본 시리즈 전 회차와 인터렉티브 기사는 세계일보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egye.com/investigative/suicide-prevention)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