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주인은 총장도, 이사회도 아닌 학생과 구성원들입니다. 소통 없는 독단적인 총장 임명제를 즉각 철회하십시오!”
12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대운동장. 초여름 날씨보다 뜨거운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재학생과 교직원, 교수 등 대학 구성원 1200여명(총학생회 추산)이 한자리에 모여 학교 법인 경기학원의 일방적인 ‘총장 임명제’ 도입을 규탄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4일에도 학생들은 검은 옷을 입고 ‘민주주의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단국대, 명지대, 아주대 등 다른 대학 총학생회 등이 보낸 연대 근조 화환 30여개가 늘어선 가운데 이사회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 ‘간선제’에서 ‘임명제’로…구성원 참여 길 막히나
이번 사태의 도화선은 대학 법인 측의 총장 ‘임명제’ 전환 움직임이다. 지난달 13일 학교 법인 경기학원 이사회가 의결한 ‘제12대 총장 선출 방식 변경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존 ‘간선제’ 방식을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제로 바꿨다는 게 총학생회의 주장이다.
기존에는 교수, 직원, 학생, 동문, 이사회 대표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총추위)’가 후보를 압축하면 이사회가 최종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총추위는 폐지되고, 현재 7명인 재적 이사들로만 구성된 ‘총장후보자 심사위’가 단독으로 후보를 심사하고 결정한다.
지태훈 경기대 총학생회장은 “대학 구성원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자율성을 침해하는 임명제를 강행했다”며 “이사회 입맛에 맞는 인물을 총장으로 앉히려는 독단적 처사”라고 성토했다.
◆ 되풀이되는 ‘망령’…교수·교직원도 “투명한 정보 공개”
대학 구성원들이 이토록 거세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구 재단 복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대는 과거 교비 횡령 등 비리 문제로 물러났던 손종국 전 총장 일가가 최근 법인 이사회로 복귀하면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재학생은 “손 전 총장의 아들인 손율 이사장이 이사회를 장악한 뒤 자신들이 통제하기 쉬운 인물을 총장으로 기용하기 위해 선출 방식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은 ‘비리 사학 일가는 학교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팻말을 들고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2년부터 정상화를 추진해온 경기대는 분란을 겪은 뒤 2022년 임시이사 체제, 2025년에는 정이사 체제로 복귀한 바 있다.
비단 학생들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경기대 지회와 직원노조 역시 공동성명을 내고 법인의 행태를 비판했다. 교수노조 측은 △총장후보자의 이력 및 소견서 공개 △심사 평가 기준 및 후보자 순위 공개 △3인 후보 최종 면접 시 구성원 대표들의 질의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수노조 측은 대학 법인이 구성원 의견을 무시하고 이사회에서 총장 선임을 강행한다면 학내 갈등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정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화 창구 마련을 요구했다.
◆ 삭발·단식 등 극한 투쟁 예고… 18일 이사회 ‘분수령’
갈등은 오는 18일 열릴 법인 이사회를 기점으로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대학 법인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규정 변경에 따른 선임 절차를 강행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에 맞서 총학생회는 임명제 철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학생회 간부들의 사퇴와 삭발, 단식 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한때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며 ‘정상화’의 길을 걸어온 경기대는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10여년 만에 겨우 회복한 정이사 체제가 ‘독주’와 ‘불복’이라는 구태에 갇히면서, 구성원들은 대학의 민주주의가 다시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