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국내 기업의 초과이윤 일부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국민배당금’ 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에선 해당 제안에 대해 “공산당이나 하는 짓”, “반시장적 인식”이라며 반발이 쏟아졌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색깔론’이라며 방어에 나섰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며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 같은 구상을 실현할 제도로 ‘국민배당금’을 제시했다. 그는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 세수는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그때그때 소진이 됐다.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클 가능성이 있다”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천재일우의 역사적 기회를 허비하는 일”이라며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실장의 발언을 두고 야권에선 일제히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12일 경북도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기업이 번 돈을 정부가 뺏어다가 나눠주는 것은 공산당이나 하는 짓 아닌가”라며 “돈을 뺏어다 나눠주겠다는 게 이재명 정부의 민낯”이라고 꼬집었다. 장 대표는 이후 SNS에도 “드디어 공산당 본색이 드러났다”며 “노력해서 번 돈을 정부가 가져가서 나눠준다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 배급경제”라고 적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해당 발언이 자본시장 불안을 초래했다며 김 실장의 경질을 요구했다. 그는 SNS에 “코스피가 상승 흐름을 이어가던 상황에서, 김 실장이 느닷없이 ‘국민배당금’ 구상을 꺼내든 후 폭락했다”며 “기업의 초과이윤을 사실상 사회적 환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악스러운 반시장적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어 “더 심각한 문제는, 일시적 산업 호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초과 세수를 마치 영구적 재원처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초호황 뒤 급락이 반복되는 시장에서, 미래 수익을 가정한 ‘국민배당금’ 논의부터 꺼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하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의원은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이 정권의 끔찍한 위선”이라며 “‘5만 전자’로 국민 노후 자금이 멍들 땐 ‘네 탓’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더니, 초과 이익엔 ‘우리가 남이가’라며 숟가락을 들이민다. 손실은 독박을 씌우고 이익은 억지로 쪼개는 국가 주도의 폭력적 약탈”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영 의원도 “정부가 할 일은 기업 이익 뺏어서 나눠주는 것이 아닌, 세금을 받아 올바르게 재정운용을 하는 것”이라며 “세금은 세금대로 걷고, 이익은 또 나눠달라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꼬집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SNS에 “2022년 초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호황에 이재명 정부가 기여한 것은 없다”며 “임직원의 땀과 ‘5만전자’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투자해 온 주주들이 인고해온 세월이 있기에, 오늘의 호황이 보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은 단 한 개의 기업이라도 더 유치하려고 주들이 앞다퉈 세금을 깎아주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삼성 당나귀와 하이닉스 당나귀 위에 어떻게 하면 짐을 더 얹을까 궁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 잘하는 당나귀 과적해서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황금알 낳는 거위를 치킨 튀겨먹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은 5년 단임제 정부가 보통 빠지는 유혹”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은 야권의 반발에 대해 “본질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과도한 정치 공세”라며 “색깔론을 덧씌워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는 것은 미래전략 논의를 정쟁으로 몰아가는 소모적 정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김 실장의 발언 취지는 명확하다. AI·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으로 대규모 법인세 초과 세수가 발생할 경우, 그 재원을 아무 원칙 없이 단기적으로 소진하지 말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체계적 활용 원칙을 미리 설계하자는 것”이라며 “기업 이익을 정부가 강제로 나눠 갖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청와대는 “정책실장이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내용은 청와대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 초반 7999까지 오르며 8000선을 넘보던 코스피는 장중 한때 5%대 급락하며 7400선까지 주저앉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에 대해 “한국의 한 고위 정책 당국자가 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