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야 할 말이 부부 사이에는 참 많다. 무심코 던지는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우울하다는 배우자에게 “당신이 예민해서 우울한 거야”라고 해버리면, 위로는커녕 상처만 더한다. 걱정을 털어놓았는데 “예민하게 굴지 마!”라는 말이 돌아오면 대화는 거기서 끝나고 만다.
예민함이 정말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바로 그 예민함 때문에 가능한 일도 많다. 예민한 사람은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변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위험을 미리 감지한다. 그래서 쉽게 염려하고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 감각 덕분에 관계를 섬세하게 살핀다. 타인의 고통을 빨리 알아차리고,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헤아릴 줄 안다. 예민한 마음에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감정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예민한 이들은 우울증에 취약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사소한 표현에도 설렘을 느낀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풍성하게 드러낼 줄 안다. 무딘 사람이라면 예민한 이의 정서적 표현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덜 흔들리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느낄 줄 알아야 더 인간답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 다른 장점은 비범한 감각이다. 음악을 들으며 소리 사이에 숨어 있는 떨림을 본다. 물감이 마르기 전 화가의 손끝이 남긴 흔적을 그림 앞에서 알아차린다. 음식도 그저 맛있다, 싱겁다로 끝나지 않는다. 단맛이 지나간 뒤 혀끝에 남는 쌉싸름함을 느끼고, 오래 끓인 국물 속에서 시간의 층을 헤아린다. 공간을 채운 공기의 무게와 조명의 밀도를 몸으로 먼저 받아들인다.
이것은 재능이면서 부담이기도 하다. 세상의 신호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아들이니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찾아오는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다. 너무 많은 자극이 들어오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문을 잠시 닫아 놓은 상태다.
예민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둔감함이 아니다. 자기 마음을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흘러가는 강물처럼 관찰해보자. 불안이 올라오면 “또 왜 이러지”라고 자신을 나무라지 말고 “내 마음에 불안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바라본다. 화가 날 때도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라고 몰아붙이지 말고 “지금 내 안에 화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마음을 곧장 고치려 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면 감정에 덜 휘둘린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도 “그냥 내버려두는” 훈련을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며 “큰일 났다”고 과잉 반응하지 말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 하늘의 뜻에 맡기자”고 해보자. 이렇게 하면 힘을 아낄 수 있다. 불필요한 생각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마음의 에너지는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데 써야 한다.
감정이 들쭉날쭉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된다. 마음은 기계가 아니므로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할 수 없다. 기분 변화를 알아차리고, 컨디션에 맞춰 자신을 조절한다. 피곤이 쌓이면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기운이 차오르면 힘차게 밖으로 나가면 된다. 환경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리, 빛, 냄새, 공간의 분위기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머무는 공간을 안온하게 구성한다. 눈과 귀가 쉴 수 있게 하자. 향과 감촉으로 활기를 되찾으면 좋다.
예민함은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다. 잘 돌봐야 할 마음의 감각이다. “예민해서 그래” 대신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부부 사이의 대화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