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재상 류성룡은 자신의 책 징비록에서 임진왜란 직전 영남지역의 한 양반으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실었다. 조선 정부가 지방 유생들까지 동원해서 성벽쌓기, 무기확충 등을 서두르자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데 왜 유난을 떠느냐’는 내용이었다. 류성룡은 전쟁 전 안이한 세태 인식을 꼬집기 위해 글을 실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편지는 ‘조선 정부는 전쟁을 준비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이도형 정치부 차장
그럼에도 조선은 임진왜란 초반 사정없이 왜군에게 패했다. 여러 이유 중 ‘항의 편지’가 있다. 영남 사람들은 조선 조정의 전쟁준비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정에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고 직간접적으로 항의를 했다.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조선 정부는 영남에서의 전쟁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정반대 사례가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전쟁 발발 1년 전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 거북선을 건조했고, 화약제조를 늘렸으며 성벽을 쌓았다. 군대훈련을 엄격하게 실시했다. 남아 있는 어떤 기록에서도 호남 사람들이 반발했다는 내용은 없다.
무엇이 달랐을까. 이순신 장군은 인간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명량해전 직전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로 휘하 군인들의 정신을 다잡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첫 승리였던 옥포해전 후 조정에 올린 장계에서 휘하 부하의 공만 나열했다. 자신의 공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어떻게 이순신이 사람의 마음을 얻었는지는 그 장계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대중은 단순무지하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다”고 썼다. 인간 사회란 원래 그렇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따르게 할 수 있냐다. 리더의 자질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갈린다.
좋은 정치인은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반 발짝 앞서간다는 건 대중의 생각, 대중의 정서를 민감하게 알아차리면서도 무조건 추종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사회를 구성하고 제도를 만들며 국가 체제를 운영해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반 발짝만 앞서 나아가야 한다. 한 발짝 앞서 나아가면 도태되고, 반 발짝 뒤처지면 정치꾼이 된다. 이순신 장군은 그 반 발짝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지금 이 땅 위의 정치인들 중 몇 명이나 ‘반 발짝’ 앞서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당원은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신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보수 강성 유튜버 등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아 당대표에 당선됐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로서는 나쁜 판단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렇다면 왜 당대표가 필요한지 두 사람에게 묻고 싶다. 대표는 이끌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다. 결정을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지금 당신들의 결정은 주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두 대표는 지금 대중보다 몇 발짝 떨어져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앞서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