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은 ‘국가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죠.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니 보호받아야 한다고 정부가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국가핵심기술입니다. 그걸 훔쳐가는 것을 막는 일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불성설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을 끝으로 지난해 29년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정성희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개정된 형법 98조(간첩법)가 ‘반쪽짜리 간첩법’에 그쳤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 변호사는 21대 국회 법사위에서 의원 발의 간첩법 개정안과 법원행정처, 법무부의 의견을 종합 검토해 대안을 마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간첩법 개정안은 그가 설계한 기초 위에서 수정·보완을 거쳐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가핵심기술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새어나갈 경우 기업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불가피해 산업기술보호법(산기법)상 보호를 받는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조선, 방위산업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산기법 위반 시 처벌 수위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낮아 기술 탈취범들이 ‘거액의 대가를 받고 감방 다녀오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가질 법하다는 것이 산업계와 안보 분야의 우려였다.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통적인 간첩행위뿐만 아니라 기술 탈취도 간첩으로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요. 간첩법 적용 범위를 ‘적국’에 더해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힌 데는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해 외국 기업이나 단체를 도와주는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입법자의 의도가 담긴 겁니다.”
1953년 일본의 전시형법을 모방해 만들어진 지 73년 만에 이뤄진 간첩법 개정은 군사 안보는 물론 ‘경제 안보’ 수호를 위한 법적 방패를 마련한 입법적 성과로 평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간첩법 적용 대상을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는데 비로소 세계 주요국 수준의 법적 안전망을 갖춘 것이다. 한 번도 고친 적이 없던 법이다 보니 개정 과정은 자료수집 단계에서부터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국회도서관에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있지만 간첩법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한 건 많지 않았습니다.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 간첩법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도 별로 없다 보니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지원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22대 국회 들어 개정안이 통과될 무렵에야 연구논문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간첩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4건 발의됐지만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 여야 의원 다수가 이 법 개정안을 재차 발의하고서야 2024년 11월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다. 국회에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정 변호사는 “법사위 전체회의까지는 통과돼야 안심할 수 있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22대 국회 초반에 소위를 통과한 법안을 4년 묵히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마냥 낙관할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와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어 간첩법이 개정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이종석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이 법 개정 필요성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간첩법이 개정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