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3초가 더 빠르다?”…신호등 앞에서 시간은 왜 다르게 흐를까

같은 신호등, 다른 체감 시간…직접 측정해보니 정확했다
전문가, “교통량·보행 환경 따라 달라지는 신호 주기, 체감은 심리 영향”

12일 오전 10시20분쯤 서울 용산역 사거리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 잔여 시간이 10초로 표시되자, 한 여성이 서두르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길을 건넜다. 그가 건너편에 도착할 무렵 신호는 곧바로 빨간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초록불이 켜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한 반면, 신호를 기다릴 때의 빨간불은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용산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씨는 “신호등을 건널 때 마지막 3초는 실제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온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 실제 측정해보니…신호등 시간은 정확했다

 

이날 기자가 용산구와 은평구 일대 신호등 3곳의 시간을 스마트폰 초시계로 직접 측정한 결과, 신호등에 표시된 잔여 시간과 실제 시간은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실제 시간을 더 빠르거나 느리다고 체감하는 걸까.

 

신호등 잔여 시간 표시 자체가 부정확해서라기보다는 사람의 인지 심리에서 비롯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보행 신호 잔여 시간 표시등은 신호 제어기에 입력된 시간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횡단보도 길이에 따라 입력된 보행 시간이 잔여 시간 표시등에 표출된다”며 “표시 시간은 유지보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신호등에서 숫자가 순간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신호 대기시간은 각 교차로의 교통량과 통행 구조에 맞춰 결정된다. 효율적인 차량 흐름과 보행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전체 신호 주기와 방향별 신호 시간은 곳마다 다르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학과 교수는 “전체 신호가 한 바퀴 도는 ‘신호 주기’ 안에서 방향별 교통량에 따라 각 신호 길이가 달라진다”며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시간도 함께 고려해 신호의 길이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도 “교차로마다 신호 주기가 150초, 160초 등 다르게 설정돼 있다”며 “통행 체계와 횡단보도 길이, 차량 통행량 등을 반영해 시간을 설정한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용산역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기자가 스마트폰 초시계로 보행 신호 잔여 시간을 측정하고 있다. 전민 인턴기자

 

◆ 빨간불은 길고 초록불은 짧다…‘체감 시간’의 심리학

 

전문가들은 보행자들의 신호 대기 체감 시간 차이 이유로 ‘인지 심리적’ 문제를 언급한다.

 

이 교수는 “빨간불 대기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져 실제보다 더 길게 체감될 수 있다”며 “초록불이 꺼질 시간이 다가오면 보행자들이 촉박함을 느끼면서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람의 심리가 시간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해외 연구 사례도 있다.

 

중국 산시사범대학교와 일본 규슈대학교 연구진은 2018년 연구에서 사람이 시간을 인식할 때 ‘주의(attention)’와 ‘각성(arousal)’ 상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긴장하거나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시간이 실제보다 길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특히 횡단보도 음향 신호에 주목했다. 빠른 템포의 소리가 사람의 각성 수준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체감 대기 시간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실제로 약 20초 길이의 음악을 들려준 뒤 시간을 추정하게 한 실험에서 음악의 템포가 빠를수록 참가자들은 시간을 더 길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빠른 리듬이 심리적 각성을 높여 시간의 체감 속도를 높였다고 해석했다. 이어 실제·모의 횡단보도 환경에서 보행 신호음의 템포를 조절해 실험한 결과, 신호음 템포가 느릴수록 보행자들이 대기 시간을 더 짧게 느끼는 경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