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군 복무 중 대남방송을 듣고 월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남성이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는 지난달 29일 적진도수미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87년 6월 군 복무 중 방책선 보강작업을 하다 월북종용 방송을 듣고 월북을 시도하다 미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A씨가 철책순찰을 하는 동안 ‘사회로 나가도 마땅한 취직자리를 얻기가 힘들 것이며 이남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므로 월북해 김일성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지상낙원인 인민공화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의 대남방송을 듣고 월북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판단했다.
A씨는 같은 해 7월 적진도주미수, 국가보안법 위반, 군용물 절도미수 혐의로 기소돼 보통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해 A씨는 항소했고, 같은 해 10월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A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A씨 청구로 법원은 39년 만인 지난해 8월 재심을 개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군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 등을 당해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에서 진술했다고 인정해 A씨 진술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군 수사관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A씨를 인도받은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구금했다며, 구속영장 집행 전까지 A씨를 불법으로 체포해 구금한 상태에서 진술 강요 등 가혹행위를 하며 수사를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심의 공소사실과 관련된 증거들은 대부분 수사 과정 중 이뤄진 부대원들의 진술뿐인데, 군 수사관의 질의에 대해 소극적으로 긍정하거나 당시 상황에 대한 본인들의 추측을 진술한 것에 불과해 신빙성을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당시 A씨를 체포했던 하사는 “A씨를 체포한 후 인계할 당시 선임하사관에게 A씨를 인계했는데, 이때 선임하사관도 A씨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안심시키고 양팔을 벌리고 껴안자 A씨는 불안하다고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당시 편도선염으로 고통받고 있다가 무의식 상태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을 뿐이라는 취지의 A씨 주장에 부합하는 사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적진도주미수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A씨가 적진으로 도주 또는 탈출한 의사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2월 A씨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당시 진화위는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가혹행위, 진술 강요 등 직무상 위법행위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