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노조 없는 초기업 노조…‘명분’보단 ‘이익’ 위해 투쟁 [삼성전자 노사 갈등 격화]

전통 노동운동과 ‘딴판’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의 성과급
보상 체계 개편 내걸어 몸집 불려
실익에만 집중… 내부적 반발도

다른 노조와 달리 집행부 6명 불과
인원 적어 “소통 소극적” 비판받아

재계 “다른 노조까지 확산 우려 커”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움직임을 두고 노동운동의 풍경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노동계가 고용 안정이나 정치·사회적 의제를 앞세웠다면, 이제는 경쟁사 수준의 성과급과 직접 보상 같은 ‘실리’가 투쟁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다. 정부 중재안까지 거부한 채 파업 가능성이 커지자 재계에서는 “성과급 요구를 앞세운 파업이 다른 대기업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사옥에 걸린 삼성그룹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스1

14일 재계와 노동단체 등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업노조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같은 상급단체와 연계해 투쟁 방향을 정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입장이나 타사 노조, 하청업체 노조와의 연계 등 상황에 따라 정부 중재에 따른 타협 가능성이 있다. 2021년 9월 민주노총 산하인 HMM 육상노조의 경우 해운 물류 대란을 우려한 정부의 중재로 파업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삼성전자 노조의 특성상 정부 대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노조가 원하는 성과급 등 보상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일부 조직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를 해서 국민에게 지탄을 받게 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며 삼성전자 노조를 직격한 바 있다. 반도체 기업이 가진 사회적 책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이날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더 이상 대화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할 때 또 대화해야 한다”며 노사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사후조정이 결렬된 직후 조합원 커뮤니티에 정부를 향해 “헛소리, 그냥 글러 먹었다”는 원색적인 표현을 썼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막판까지 대화를 독려한 정부를 비난한 것이다.

 

갈등의 중심에는 파업을 주도한 초기업노조가 있다. 초기업노조는 2024년 2월 출범 당시부터 “상급단체 없이 정치색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조합원 6500명 수준에 불과했던 초기업노조가 불과 7개월 만에 조합원 7만4000명을 돌파하며 과반노조를 확보한 배경도 바로 ‘개인의 이익’이었다. 초기업노조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비 높은 수준의 성과급 요구를 약속하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에서 이탈한 DS(반도체사업)부문 직원들을 빠르게 끌어안았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등 노조측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사후조정회의 도중 최후통첩을 밝힌 뒤 협상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초기업노조의 요구안은 노동운동의 보편적 가치인 ‘연대’보다는 실익에 집중돼 있다. 통상 노조는 처우 개선을 목표로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와의 상생 의제를 함께 다루며 쟁의행위의 명분을 쌓는다. 현대차 노조는 하청 노조와의 공동 교섭을, 현대중공업 노조는 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연대 의지를 강조했다. 반면 초기업노조는 3만5000여명에 달하는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와의 이익 공유보다는 자신들의 보상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처럼 실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내부적인 반발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부문 중심의 요구안이 모바일 사업 등을 하는 DX(디지털경험) 부문 직원들의 소외감을 불러일으켜, 하루 1000명 이상의 직원이 노조를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도 DX 부문 일부 직원들은 초기업노조의 일방적인 교섭 방식에 반발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 위한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노조는 대의원과 집행부가 일반 노조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민주적인 절차로 운영된다. 하지만 초기업노조의 경우 대의원을 포함한 집행부는 6명에 불과하다. 노조원 2만3000여명의 전삼노의 경우 집행부가 32명이다. 초기업노조가 소통에 소극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맞닥트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카카오, HD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기아, LG유플러스 등 재계는 삼성전자 노사갈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삼성전자는 산업계의 수많은 기준을 만들어 왔다”며 “정부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에 나설 경우 사실상 수많은 노조가 파업을 볼모로 성과급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