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 칸 거리 곳곳에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이미지가 내걸려 있다. 칸 국제영화제 주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발을 비롯해 버스 정류장과 상점 유리창까지 동일한 포스터가 도시 전역을 채우고 있다.
제79회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 스틸 이미지다. 오픈카 위에 걸터앉은 수잔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의 모습이 담겼다. 흰 티셔츠와 선글라스, 청바지 뒤로 보이는 총까지, 영화가 상징하는 반항과 해방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이미지다. 성폭력 위협 이후 도주를 택한 두 여성의 여정은 35년 전 할리우드 남성 중심 서사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슬렀고, 이후 페미니즘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35년이 흐른 지금 영화제가 이 이미지를 공식 포스터로 선택하면서 작품의 상징성을 환기했지만, 여성 창작자들에게는 충분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여성 감독 비중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22편 중 여성 감독 작품은 단 5편에 그쳤다. 오스트리아 감독 마리 크로이처(48)는 ‘젠틀 몬스터’를, 독일 감독 발레스카 그리제바흐(58)는 ‘꿈꾸는 모험’을 선보인다. 프랑스 감독으로는 잔 에리(48)의 ‘가랑스’, 샤를린 부르주아-타케(40)의 ‘여자의 일생’, 레아 미지우스(37)의 ‘생일 파티’가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비-유럽 감독은 한 명도 초대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여성 감독(7명)보다 줄어든 수치다.
12일(현지시간) 열린 개막 기자회견에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관련 질문에 대해 “영화는 감독의 성별이 아니라 작품의 질로 선정된다”고 말했다. 경쟁 부문뿐 아니라 전체 섹션을 함께 봐야 한다고도 설명헀다.
실제 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특별 상영, 칸 프리미어까지 올해 공식 섹션을 통틀어 여성 감독 장편영화 비율은 34%로, 지난해 대비 약 8%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는 19편 중 10편이 여성 감독 작품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하지만 칸 영화제의 권위가 결국 황금종려상을 놓고 겨루는 경쟁 부문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부문 여성 감독 비율이 22%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다양성과 페미니즘의 상징성을 강조한 포스터 선정과 달리 실질적 다양성 확보는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페미니즘 워싱’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영화계 성평등 단체 ‘50/50’은 이번 포스터에 대해 “상징의 도구화”라는 평가를 내놨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14일 “여전히 ‘작가(auteur)’는 남성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며 “유리천장을 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우먼 인 필름’ CEO 커스틴 셰퍼 여성 영화 단체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