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15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은 자정을 넘은 시간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연상호 감독과 배우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이 영화 ‘군체’의 세계 최초 공개를 위해 레드카펫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100여대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연상호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칸 레드카펫 입구에 도착하자, 올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박찬욱 감독이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연출됐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액션·스릴러·호러 등 장르영화를 심야 상영하는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받았다. 2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세계 최고 권위 영화제에서 먼저 관객들과 만난 셈이다. 연 감독은 10년 전 영화 ‘부산행’으로 같은 부문에 초청받은 바 있다.
극장 앞에는 영화 팬들이 상영 수 시간 전부터 영화 팬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날 뤼미에르 대극장 2300여 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16일과 17일 상영 역시 매진됐다.
연 감독과 배우들은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환영을 받으며 극장 안으로 입장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들의 등장과 함께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이름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환호가 이어졌다. 영화관이라기보다 인기 팝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군체’는 서울 도심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진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를 그린다. 건물은 순식간에 봉쇄되고, 내부 사람들은 고립된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좀비 마스터’ 연상호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실사 좀비 영화지만, 기존 좀비들의 익숙한 문법을 답습하지는 않는다. ‘부산행’(2016)이 달리는 열차라는 폐쇄 공간에, ‘반도’(2020)가 폐허가 된 한반도라는 공간에 주목했다면, ‘군체’는 감염체들이 만들어내는 군집 공포와 지능형 위협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배경은 상업시설과 컨벤션센터가 결합한 서울 도심의 고층 빌딩 ‘둥우리 빌딩’이다. 이곳에서 한 바이오 기업이 주최한 콘퍼런스가 열리고, 그 현장에서 좀비 사태가 발생한다.
사태의 중심에는 과거 해당 기업에 몸담았던 천재 생물학자 서영철(구교환)이 있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갈망하는 그는 “오늘 실험을 하려고 합니다. 아, 실험이 아니라 테러”라고 선언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몸에 백신이 있다고 주장하며 당국과 생존자 모두의 표적이 된다.
콘퍼런스 현장에는 대학 재임용에 실패해 일자리 기회를 찾아 나섰던 생물학자 세정(전지형)이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생존자 그룹의 리더가 되고, 감염자의 행동과 진화 패턴을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축에는 둥우리 빌딩 보안팀 직원 현석(지창욱)과 그의 누나 현희(김신록)가 있다. 현석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누나를 보호하며 생존을 모색한다. 건물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이동과 탈출의 핵심 역할을 맡는다.
생명공학자 설희(신현빈)는 둥우리 빌딩에 간 남편 한규성(고수)과 연락이 끊기자 특별조사팀과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 그녀는 빌딩 외부에서 사태를 관찰하며 내부 생존자들과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본다.
‘군체’의 좀비는 단순히 공격하고 확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학습하며 집단으로 움직인다.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작동하는 구조로, 점차 인간 이해의 한계를 시험한다.
영화는 이 설정을 바탕으로 인간과 감염체의 관계를 계속 바꿔간다. 좀비가 진화할수록 인간 역시 역할과 전략을 바꾸며 대응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생존극보다 전략과 지능의 대결 양상으로 변모한다.
123분의 영화 상영이 끝난 시간은 새벽 2시 53분쯤. 주말 밤의 칸은 ‘군체’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1층 객석에 앉아 있던 연상호 감독은 마이크를 잡고 “너무나 꿈에 그리던 칸영화제에서 ‘군체’라는 작품을 다시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라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앞으로 영화를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다. 메르시 보쿠(Merci beaucoup,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군체’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새벽 시간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거리에 모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옹에서 온 라파엘은 “좀비를 연기한 스턴트 배우들과 분장, 미술이 정말 대단했다”며 “스릴이 가득한 액션이 가득했고, 기분 좋은 혼돈이 파도처럼 몰려왔다”고 호평했다. 반면 프랑스인 나딘은 “‘부산행’은 내 인생 최고 좀비 영화”라며 “이번에는 그 영화를 볼 때만큼 감정적으로 강하게 반응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