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 관료 수부터 상공업 통계까지… 대구 옛 모습 ‘수치’로 살려냈다

조선 후기 영남 지역 행정 중심지였던 경상감영의 관료(공무원) 수는 18세기 중반 기준 총 132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부터 1920년 사이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되면서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 수는 약 10년 만에 5702명에서 1만2603명으로 2.2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구의 사회∙경제적 변화상을 구체적인 숫자와 통계로 실증하는 옛 기록물 ‘영영사례(嶺營事例)’, ‘경북요람(慶北要覽)’, ‘대구요람(大邱要覽)’의 번역본을 각각 대구사료총서 제5∙6∙7권으로 발간했다고 17일 밝혔다.

 

대구요람에 수록된 옛 대구 원정(현재의 북성로) 모습. 대구시 제공

이번에 발간된 사료총서는 단순한 역사적 서술을 넘어 행정∙재정∙인구 등 객관적인 수치 자료를 통해 대구의 옛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5권 ‘영영사례'는 조선 시대 경상감영의 운영 전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종의 행정 업무 편람이다. 대구가 경상감영의 소재지로서 지녔던 위상과 당시의 구체적인 행정 운영 사례, 재정 구조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자료로 꼽힌다. 이번 번역본은 역사적 가치를 극대화했다.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존경각본’과 가장 늦은 시기의 ‘규장각본’을 동시 수록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과 시민들은 140여 년에 걸친 경상감영의 행정∙재정적 변화상을 한눈에 비교∙분석할 수 있게 됐다. 번역은 정병호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가 맡았고, 임덕선 영남문헌연구원 원장이 윤문해 완성도를 높였다.

 

대구요람에 수록된 옛 대구 서문시장 모습. 대구시 제공

제6권 ‘경북요람’과 제7권 ‘대구요람’은 일제강점기 초기 10년 사이에 급변한 대구의 사회∙경제적 이면을 알려준다. 1910년 대구신문사가 제작한 ‘경북요람’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조선농사시찰단’을 타깃으로 한 안내서다. 대구와 경북이 일본인의 이주와 농업 경영에 최적화된 땅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통계를 동원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20년 대구상업회의소가 발간한 ‘대구요람’은 식민지 지배가 심화된 대구의 경제, 특히 상공업계 현황을 촘촘한 정보와 통계로 실었다. 이 두 권은 최범순 영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와 정찬휘씨가 번역했다.

 

시는 2016년부터 과거 대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한문·일본어 고서들을 꾸준히 번역해 왔으며, 2024년부터 그 결과물을 ‘대구사료총서’ 시리즈로 엮어 발간하고 있다.

 

황보란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앞으로도 지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번역하고, 향후 대구시사 편찬에 필요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축적해 나갈 계획”이라며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