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추락서 최근 소폭 반등 1명 유지해도 지역·국방 ‘흔들’ 꾸준히 반등 안정사회 만들려면 출산·양육 가능한 환경 조성돼야
최근 한국의 출산율은 바닥을 찍고 소폭 반등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마다 저점을 경신하며 끝없이 추락하던 출산율이 반등했다는 소식은 분명 반갑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반등 수준이 여전히 세계적으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일본과 여러 서구 국가도 한때 출산율 반등을 경험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하거나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흐름을 보였다. 사회·경제·문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반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는 ‘일시적 반등 후 고착화’다. 합계출산율이 1명 수준까지 회복되지만 이후 더 오르지 못하는 경우이다. 숫자만 보면 “0명대는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의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 연구원 원장
국가데이터처의 인구추계 가정으로서 합계출산율 1.08로의 회복 시나리오를 보면, 2070년 생산가능인구는 지금보다 약 1900만명 줄어든 1711만명 수준까지 감소한다. 경제를 떠받치는 인구 기반이 사실상 절반 이상 사라지는 셈이다.
반면 노인인구는 1768만명으로 늘어나 일하는 사람 수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 된다. 연금·건강보험·장기 요양 부담은 급격히 커지고, 청년층의 세금 부담과 세대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은 더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출산율 1명 수준이 이어진다면 미래에는 중소 도시 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몇몇 초거대 도시권만 남고 나머지 지역은 빠르게 비어가는 사회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국방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의 병력 유지 체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첨단무기 중심의 소수 정예 체제로 전환이 불가피하지만, 그 역시 충분한 청년층과 산업·재정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출산율은 어느 수준까지 회복되어야 할까. 출산율이 독일 수준인 1.34명 정도까지 올라가더라도 초저출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 붕괴 속도는 확연히 늦출 수 있다.
독일 역시 고령화 압력을 겪고 있지만, 한국의 0명대 사회와는 달리 산업·복지·지역 시스템을 유지할 인구 기반은 확보하고 있다. 한국이 이 수준까지만 회복해도 장기적으로 생산가능인구를 약 150만명 더 유지할 수 있다. 제조업 노동력, 소비시장, 병역자원, 지방대학 존립, 세수 기반 전체가 달라질 수 있는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58명까지 회복된다면 상황은 더 달라진다. 프랑스처럼 고령사회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출산율 1명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와 비교하면 생산가능인구는 약 190만명, 유소년인구는 150만명 이상 많아진다. 몇 개 광역시 규모의 다음 세대가 추가로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소비시장, 대학 체계, 기업 투자, 지역 유지 가능성 전체를 바꾸는 차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반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반등’이다. 잠깐의 회복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다시 낮은 수준에 고착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출산율 반등은 단지 아이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 감소를 늦추고, 지역 소멸 압력을 완화하며, 복지와 국방의 기반을 유지하게 만드는 사회 전체의 생존 조건에 가깝다.
더 중요한 것은, 출산율 회복이 다시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든다는 점이다. 아이가 꾸준히 태어나는 사회에서는 학교와 돌봄, 소아 의료와 지역 공동체가 유지된다. 청년이 남는 지역은 다시 다음 세대를 키울 기반이 된다.
기업은 미래 시장을 기대하며 투자하고, 국가는 보다 안정된 재정 위에서 가족·아동정책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결국 출산율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다음 세대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반이기도 하다.
출산율은 단순한 인구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미래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조적 지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더 낳게 할 방법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사회적 토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대한민국이 “축소를 견디는 사회”를 넘어 지속가능성을 회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