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성희 “보육원 출신에 새로운 경험… 성악가 꿈 이끌어” [차 한잔 나누며]

소프라노 박성희의 ‘희망 프로젝트’

한겨울 반바지·슬리퍼 첫 만남
6년 넘도록 곁에서 신뢰 쌓아
주말마다 성악 지도·예절 교육
해외 연주 동행 후 가치관 변화
대학 진학… 목표 후 삶 ‘반짝’

소프라노 박성희(48)씨에게는 4명의 특별한 제자가 있다. 올해 한 대학교 성악과에 합격한 이가흔(가명·19)양을 비롯해 2020년 경기 가평의 한 대안학교에서 만난 보육원 아이들이다. 박씨는 “가흔이는 무대에 세워놓으면 긴장을 안 한다”며 “또래 아이들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지나온 게 가흔이를 강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만난 소프라노 박성희(48)씨가 지난 3월19일 보육원 출신 제자 이가흔(가명·19)양의 대학교 합격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이양은 세상을 누비며 노래하는 성악가를 꿈꾸고 있다. 성악과 학생의 평범한 목표처럼 보이지만, 이양은 원래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비서’를 꿈꿨다. 박씨를 만나 유럽 연주여행, 예술고등학교 입학 등의 경험을 쌓은 이양은 “연주여행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어울리는 법,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며 “미국에서부터 전남 신안, 네팔 오지까지 다니는 선생님처럼 각지를 다니며 공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17일 박씨는 세계일보와 만나 “가흔이가 대학에 당당하게 합격한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처음엔 노래를 가르치겠다는 생각보다 옷 입는 법,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씨와 이양은 2020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한겨울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인연은 한 신부님의 개인적인 부탁에서 시작됐다. 박씨는 “새로 생기는 대안학교에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오는데 재능 기부를 해달라고 부탁받았다”며 “4명의 학생이 아들과 나이가 같아 더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말마다 자신의 연습실에 네 학생을 불러 성악을 가르쳤다. 박씨가 해외 연주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여러 제자가 번갈아가며 주말 시간을 보냈다.

 

박씨는 이양에게 ‘6년이 지나도록 떠나가지 않은 첫 어른’이었다. 박씨는 “보육원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교사들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며 “한 방에서 약 10명이 생활하며 생활 습관 교정이나 ‘자기 삶·자기 것’에 대한 관념도 갖기 어려웠다”고 했다.

 

박씨와의 레슨으로 한 국립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양은 쟁쟁한 학생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위축감을 느꼈지만, “오히려 노래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예고에 입학하면서 실기 시험 2∼3등을 기록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됐던 것 같다”고 했다.

박씨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이양과 친구들은 서서히 변했다. 가장 큰 계기는 20여일간 박씨의 이탈리아 공연 일정에 동행한 것이었다. 이양은 공연을 단순히 관람하는 것뿐 아니라 해외 유수 성악가들의 마스터 클래스도 들을 수 있었고, 현지인들 앞에서 노래하면서 ‘보육원 출신’이라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박씨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어린 학생들이 본인들의 노래를 불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했다”고 전했다.

 

이양은 대학교에 입학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 말에 “해외에서 공연하고 유학도 가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곁에는 또 다른 도움의 손길도 있었다. 미혼모를 지원하는 재단 칸나희망서포터즈 대표를 맡은 양소영 변호사가 학업을 지원했다. 양 변호사는 “사단법인 안에서 영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 영어 강사가 아이들과 함께 매주 초등학교 4~5학년 수준에서 시작해 수능 공부까지 같이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릴 때 환경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도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가르쳐줄 수 있는 걸 해줄 테니 같이 채워나가 보자’,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