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영화가 폭력적이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프랑스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최고 등급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를 수훈한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 카트린 페가르로부터 메달을 받은 후 답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 심사위원장을 맡은 그는 이날 오전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칸 팔레데페스티벌에서 훈장을 받았다. 코망되르를 받은 한국인은 2002년 김정옥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2011년 지휘자 정명훈, 2025년 5월 소프라노 조수미에 이어 박 감독이 네 번째다.
페가르 장관에 감사를 표한 박 감독은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렸다. “연로 하셔서 두 분 다 편찮으신데, 오늘 이 소식이 그분들께 좋은 선물이 되리라 확신한다”면서 부모님 덕에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을 프랑스와 첫 인연으로 언급했다.
그는 “어릴 적 성당에 다니면서 받은 인상들이 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여러 순교자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이미지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또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대학 시절 프랑스의 68혁명과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 실존주의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 무렵 에밀 졸라와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을 읽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아주 지극히 냉정한 관찰, 분석”을 배웠고, “프랑스에서 받은 모든 영향들이 종합되는 기분을 받았다”고 했다.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은 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박쥐’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와 인연의 정점은 2004년 칸영화제를 꼽았다. 당시 영화제는 ‘월드 프리미어’ 공개 규정을 깨고 한국에서 이미 개봉한 박 감독의 ‘올드보이’를 경쟁 부문에 초청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이 영화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박 감독은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는 “그 사건은 저한테는 정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고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티에리(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의 선택이었고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또 마지막 소원으로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찍어보는 것. 그것만 남은 것 같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 답사 전문]
여러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 하셨듯이 서울에서 만나서 이미 친구가 됐으니까 이렇게 이름으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카트린, 감사합니다. 제 삶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서서 듣게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지금 연로 하셔서 두 분 다 편찮으신데, 오늘 이 소식이 그분들께 좋은 선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저에게 프랑스와 가깝게 느껴지도록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를 카톨릭 신자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더 이상은 성당에 가지 않지만 어렸을 때 성당에 다니면서 받은 인상들이 저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순교자들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그런 이미지들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왜 이렇게 영화가 폭력적이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프랑스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장관께서 제임스 본드 영화나 서부영화들 그리고 영국 영화들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어렸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 영화였습니다. 그게 너무 제 영화들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한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사실은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를 어렸을 때 본 것이 저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줬거든요.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은 사람이 왜 이따위 영화를 만드느냐라는 말을 할까봐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습니다만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갔을 때는 아무래도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68혁명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고, 배웠고요. 그리고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 실존주의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아마 프랑스 여러분들은 한국 젊은이들이 까뮈의 이방인을 얼마나 많이 읽는지 얼마나 인기 있는 작품인지 알면 놀라실 겁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할 무렵에서야 뒤늦게 에밀 졸라, 발작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그 영화를 보고 그 낭만주의와 또 혁명의 그런 비판적인 시각 이런 것에 대한 영향을 다 종합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졸라와 발작을 읽으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아주 지극히 냉정한 관찰, 분석 그리고 그런 것에서 모든 것이 프랑스에서 받은 모든 영향들이 저에게는 종합되는 그런 기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프랑스와 저의 인연의 정점은 아마도 2004년 깐느 영화제이겠죠. 그 사건은 저한테는 정말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고요. 쉽게 말해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할 수 있겠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당시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의 선택이었고, 그것이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심사위원장으로서 깐느에 다시 오게 될 때까지 그 인연이 계속 길게 이어졌습니다.
제가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만큼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는 것만큼 또 저 자신이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에게 어떤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서로의 이 주고받는 문화와 예술의 영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현실이 저에겐 너무나 감동적으로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은 언젠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어보는 것. 그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