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까지 삼전닉스로”…코스피 ‘8000’ 뒤 커진 퇴직연금 쏠림 [숫자 뒤의 진실]

코스피 장중 첫 8000선 돌파 뒤 같은 날 급락
5대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 108조원 육박해
은퇴 앞둔 세대, 수익률보다 ‘버틸 시간’ 봐야

“노후자금까지 삼전닉스로”

 

코스피가 장중 8000선을 돌파한 뒤 같은 날 급락하며 증시 변동성이 커졌다. 반도체 대표주에 접근할 수 있는 퇴직연금 상품이 늘면서 노후자금의 투자 비중과 회복 가능 시간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ChatGPT 생성 이미지

이달 15일 오전, 코스피 전광판에 처음으로 ‘8000’이라는 숫자가 찍혔다. 사상 첫 장중 8000선 돌파였다.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한때 8046.78까지 올랐던 지수는 오후 들어 빠르게 밀렸다. 종가는 7493.18. 하루 등락 폭은 시장의 환호와 불안을 동시에 보여줬다.

 

노후자금 시장도 이 숫자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60만1000명 가운데 50만2000명, 83.5%가 연금 대신 일시금 수령을 택했다. 연금 형태로 받은 사람은 9만9000명, 16.5%에 그쳤다.

 

연금으로 받는다고 해도 길게 나눠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2025년 연금 수급자 중 약 82%가 10년 이하 단기 연금을 선택했다.

 

퇴직연금이 아직 ‘평생 소득’보다 한 번에 손에 쥐는 ‘목돈’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적립 단계의 퇴직연금은 더 적극적인 운용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예금 금리만으로는 물가와 은퇴 후 생활비 부담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불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 상승세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겹치면서다.

 

◆퇴직연금 자금, ‘직접 운용’ 쪽으로 움직였다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인용한 금융권 자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등 5대 증권사의 올해 1분기 퇴직연금 DB·DC·IRP 적립금 합산액은 107조956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37.3% 늘어난 규모다.

 

눈에 띄는 것은 증가 속도보다 ‘자금의 방향’이다. 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는 DB형 적립금은 1년 새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DC형은 같은 기간 56% 급증했다.

 

퇴직연금 운용의 무게중심이 원리금 보장형 중심에서 가입자 선택형 상품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은퇴 이후 생활자금으로 쓰여야 할 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시장 변동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대표주에 대한 관심도 이 흐름을 키웠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기대가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연금 계좌 안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투자 대상이 됐다.

 

ETF 시장도 통로를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담은 채권혼합형 ETF가 잇따라 나오면서 퇴직연금 계좌에서 반도체 대표주에 접근하는 방식이 늘었다.

 

일부 채권혼합형 상품은 주식 비중을 낮춰 퇴직연금 규정상 안전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다. 위험자산 투자 한도 70%와 별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 관심을 끌고 있다.

 

문제는 편입 가능성과 안전성이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채권을 섞었다고 해서 주가 변동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들어간 상품이라면 반도체 업황, 외국인 매매, 환율,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에 따라 수익률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수익률보다 먼저 봐야 할 건 ‘회복 시간’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를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을 방어하려면 일정 비중의 위험자산 편입은 필요하다.

 

문제는 비중과 시간이다. 퇴직연금은 일반 투자금과 성격이 다르다. 손실이 나도 월급으로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특히 은퇴가 가까운 세대는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젊은 투자자보다 짧다.

 

같은 20% 손실이라도 30대 투자자와 60대 은퇴 예정자가 느끼는 무게는 다르다. 30대에게는 조정장이 시간이 지나 회복될 수 있는 구간일 수 있다. 60대에게는 다음달 생활비와 병원비를 줄여야 하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업황 전망이 밝더라도 주가는 기대를 먼저 반영한다. 기대가 커질수록 가격은 빨리 오르지만, 분위기가 식는 순간 매도도 빠르게 몰릴 수 있다.

 

15일 코스피가 장중 8000선을 넘은 뒤 같은 날 7500선 아래로 밀린 흐름은 그 변동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강세장에서는 늘 비슷한 말이 돈다. “조금 더 들고 있으면 된다”, “이번엔 다르다”, “팔면 다시 못 산다”는 말이다.

 

코스피 급등락 속에 퇴직연금 투자 불안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은 단기 수익률보다 은퇴까지 남은 시간과 손실을 견딜 수 있는 생활 여력을 함께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퇴 시점이 가까울수록 변동성 높은 자산 비중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

퇴직연금 계좌 앞에서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얼마를 더 벌 수 있느냐보다 중요한 건, 시장이 흔들릴 때 생활을 몇 년이나 버틸 수 있느냐다. 은퇴까지 시간이 10년 이상 남았다면 하락장을 견디며 다시 올라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은퇴가 임박했거나 이미 생활비를 연금 계좌에서 꺼내 쓰고 있다면, 같은 투자라도 훨씬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

 

코스피 8000이라는 숫자에는 시장의 기대감이 담겼다. 같은 날 7500선 아래로 밀려난 지수는 노후자금이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불안과 변동성도 함께 드러냈다.

 

한 자산관리 전문가는 “퇴직연금은 일반 투자계좌처럼 단기 수익률만 보고 접근할 성격의 자금이 아니다”라며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중요한 건 ‘얼마나 더 오를까’가 아닌, 시장이 흔들릴 때 생활비를 감당하며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 먼저 점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