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싫어요 안돼요 말했는데…女보육교사가 소년소녀 성추행"

"남녀 중학생 속옷 벗기고 구타하기도…여러 아이들 보는데도"
"심각한 아동학대·인권침해·성폭력에도 가해자 처벌 없었다"
"전면적이고 정밀한 재수사 필요"…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 편집자 주= 제천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 인터뷰는 내용이 많아 다섯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성폭력 등을 주로 다뤘습니다. 지난 11일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집단 가혹행위를 담았습니다.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첫 번째 기사의 요약을 수록했습니다. 3∼5번째 기사는 다양한 양태의 물리적 폭력, 정서적 폭력,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명 대신에 가명을 사용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보육원 내 감옥방에 갇히게 됐습니다. 나는 친구들보다 겁이 무척 많은 여자아이였습니다. 잠시도 감옥방을 견디기 어려웠고, 무서워서 벌벌벌 떨었습니다. 긴장되다 보니 소변이 마려웠는데, 마마(원장)는 화장실에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감옥방 내에 있는 페트병에 소변을 봐야 했습니다. 밤 9∼10시가 넘어서 마마에게 무릎 꿇고 울면서 내보내 달라고 빌었습니다. 두 번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마는 빌고 있는 나의 두손을 쇠 파이프로 내리쳤습니다. 그분은 지역 내에서 푸른 눈의 천사로 알려진 분입니다."

지난 5월5일 고아권익연대 행사에서 시위 중인 백승현 A아동시설 피해자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보육원 사무국장과 사무실 직원은 사춘기 남녀 아이들의 속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다른 남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떤 여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게 2차 성징과 관련한 성추행을 했습니다. 싫다고 했고, 안 된다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충북 제천의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4월 11일부터 여섯 차례 진행됐으며, 참여자는 14명이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인터뷰는 서울, 제천, 청주, 고양(경기도) 등 참여자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진행됐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4명의 이름(가명)과 연령대는 ▲서윤(여) 10대 후반 ▲하린(여) 20대 중반 ▲빛나(여) 20대 중반 ▲하준(남) 20대 중반 ▲찬인(남) 20대 중반 ▲대한(남) 20대 중후반 ▲민수(남) 20대 중후반 ▲정민(남) 20대 중후반 ▲루아(여) 20대 후반 ▲예린(여) 20대 후반 ▲도영(남) 20대 후반 ▲서준(남) 30대 초반 ▲지훈(남) 30대 중후반 ▲제트(남) 30대 중후반 등이다.

고아권익연대가 제천시청 앞에서 고공 사다리차를 세워놓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이들은 인터뷰에서 "교도소에서는 매일 밥을 먹을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화장실에 갈 수 있으며, 목이 마르면 물을 먹을 수 있다"면서 "우리가 자랐던 시설은 이런 것이 제대로 안 되는 곳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 시설에서 아동학대, 인권유린, 성추행 등이 심각하게 진행됐지만, 2013년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법적인 처벌은 당시 원장이 벌금 150만원 낸 것 외에는 없었다"면서 "그 원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2023년에 다시 복귀했다"고 전했다.

백승현 A 아동양육시설 피해자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이유와 이 지역 내 시청, 경찰, 검찰, 법원 등의 사람들이 우리 시설과 어떤 사이였는지, 왜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지, 누가 외압을 행사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보육원, 시청, 경찰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조차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국가의 방임에 따른 이런 참혹한 폭력은 전국의 보육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국가인권위는 이 시설 내의 아동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고 2013년 5월 발표한 바 있다. '타임 아웃방(감옥방)'을 운영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2013년 당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아동양육시설 원생들. 연합뉴스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의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시기에 따라 피해 양태가 똑같지 않습니다. 대화에 등장하는 '마마'는 이 시설 설립자인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로, 1963년 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원장을 지냈습니다. 마마는 친근한 엄마라는 뜻입니다. 당시 보육원 아이들은 원장을 '마마'로 불렀기에 이 기사에서도 '마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다음은 인터뷰 2차 기사 질문-답변

- 아이들에 따라서는 감옥방(타임아웃방)에 혼자 갇혀 있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울 텐데.

▲ (예린)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또는 여중 1학년 때였다. 보육원 언니가 나한테 생활지도사 선생님께 손가락 욕을 하라고 시켰다. 서양 사람들이 하는 그 손가락 욕이다. 나는 하기 싫었지만, 거부하면 그 언니한테 마구 맞으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욕을 받은 선생님은 마마(원장)한테 일렀고, 나는 감옥방에 갇혔다.

- 감옥방 생활은 어떠했나.

▲ (예린)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겁이 많았다. 아기 때도 혼자 있는 것을 유난히 무서워했고, 천둥소리 등에 매우 예민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내 친구들은 감옥방에서 오랫동안 버텼지만, 나는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감옥방에 갇힌 그날도 무섭고 긴장하다 보니 금방 소변이 마려웠다. 나는 감옥방 문을 열고 나가서는 마마 방 옆에 있는 벨을 눌렀다.

- 감옥방은 밖에서 걸어 잠가 놓는 것이 아니었나.

▲ (예린) 내가 감옥방에 갇혔을 때는 보육원 측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서 마마 방의 벨을 누를 수 있었다.

- 벨을 눌렀더니 마마가 나왔나.

▲ (예린) 그렇다. 나는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했다. 마마는 안 된다고 했고, 나는 감옥방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결국 나는 감옥방에 있는 페트병에 소변을 봐야 했다.

- 몰래 화장실에 갔다 오면 안 되나

▲ (예린) 그게 발각되면 감옥방 기간이 연장된다. 그래서 허가 없이 가지 못한다.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은 "우리는 교도소와 군대를 합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에서 생활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한 교도소의 감시탑 모습. 연합뉴스

- 그 이후 어떻게 됐나.

▲ (예린) 보육원 측은 점심도 주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벨을 계속 눌렀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밤 9∼10시쯤 됐다. 계속 무서웠기에 다시 나가서 마마 방의 벨을 눌렀다. 나는 마마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다시 감옥방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30분 후에 다시 나와서 벨을 눌렀다. 무서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어떻게 됐나.

▲ (예린) 나는 또다시 마마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그런데 마마는 갑자기 옆에 있던 쇠 파이프를 집어 들더니, 빌고 있는 나의 두손을 내리쳤다. 단면이 ㄷ자 형태인 긴 쇠 파이프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바닥을 위로 향했고, 손등이 아닌 손바닥을 맞았다.

- 원장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 (예린) 벨이 자꾸 울렸을 때 일어나는 분노를 참고 있다가 끝내는 폭발시킨 듯했다. 마마가 쇠 파이프로 내리치는 바람에 내 손가락의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났다. 마마는 그걸 보고 미안했는지 숙소로 보내줬다.

- 이 기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나.

▲ (예린) 이 사건은 나의 보육원 생활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불을 켜놓고 잔다. 그러지 않으면 가위눌리기 때문이다. 아직도 1주일에 2…3차례씩 악몽을 꾼다.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마마가 쫓아오고 나는 달아나는 내용이다. 그러다 잠을 깨면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도 가지 못한다. 10년간 공황장애 약을 먹기도 했다. 지금도 트라우마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 그때 말고는 감옥방에 간 일이 없나.

▲ (예린) 나는 감옥방에 많이 가지 않았다. 감옥방이 무서우니 나름대로 머리를 썼기 때문이다. 감옥방에 갈 일이 있으면 그 대신에 일을 하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4학년 때 아기들의 천 기저귀를 대량으로 빨기도 했고, 주방에 가서 양파 까는 일도 했다. 계단 청소도 했다.

A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들은 손과 발이 다른 사람에게 잡힌 상태에서 엉덩이를 몽둥이로 맞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사진은 이 보육원 출신 청년들이 그 상황을 재연한 것이다. 연합뉴스

- 감옥방 감금 외에 속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맞은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 (루아)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속옷(팬티)까지 벗겨진 상태에서 맞는 일이 많았다. 사무국장이 때리다가 힘들면 사무실의 남자 과장인 000에게 때리라고 했다. 몽둥이로 맞으면 아파서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그때는 다른 직원 등 2명을 동원해서 다리와 팔을 잡게 하고는 때렸다. 이런 방식으로 맞은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지속됐다.

- 중학교 1학년생이면 사춘기인데.

▲ (루아) 등하교 때 우리는 항상 단체로 인사했다. 등교할 때는 마마에게, 하교할 때는 사무국장한테 인사를 했다. 속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맞은 것은 주로 하교할 때였다. 사춘기 때에도 남녀 아이들 여러 명이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이 그렇게 맞을 때는 구타자가 남자 아이들에게 돌아서 있으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런 조치 없이 때린 경우도 있었다.

- 속옷을 벗기고 때린 이유는 무엇인가.

▲ (예린) 아이들은 덜 아프기 위해 미리 옷을 여러 겹으로 입는 경우가 있었다. 바지 안에 책을 넣는 아이도 있었다. 구타자는 그걸 알기에 바지뿐 아니라 속옷도 벗겼다.

▲ (대한) 그들은 속옷을 발목까지 끌어내리기도 했고, 반항하면 아예 발목에서도 벗겨버렸다.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 그때 맞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 (루아) 귀가 시간을 안 지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학교를 마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보육원에 도착해야 하는데, 1분만 늦어도 맞는 경우가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이런 이유로 맞았다. 초등학교에서 보육원까지 걸으면 40∼50분 정도 걸리는데, 아이들 여러 명이 어울려 걸어오다 보면 늦을 수 있다.

- 버스는 없었나.

▲ (루아) 보육원이 운용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많으니 못 타는 경우가 꽤 있었다. 버스는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였기에 모두가 탈 수 없었다. 또 학교 앞의 버스 타는 곳에 조금만 늦게 도착해도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버스를 운전하는 000가 특정 아이들에게는 보육원까지 걸어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한 씨가 그린 A시설 남자방 배치도. ■은 목욕중 성추행 당한 샤워장이며 ●은 분무기로 추행당한 복도 끝 서랍장 옆이고 ▲은 여자 뵤육교사가 안마를 시켰던 방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주로 방1과 방2에서 잤고 방3은 야근하는 보육교사가 자는 곳이었다고 한다.

-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등 성폭력을 당하는 일도 꽤 있었나.

▲ (대한)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쯤이었다. 그날도 000 여자 선생님이 나를 씻겨줬다. 당시 샤워실에는 그 선생님과 나만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씻겨주면서 나의 은밀한 부위를 만졌고, 엉덩이 부분도 터치했다. 유독 이런 부위에 손길이 오래 맴돌았다. 사춘기여서 알 만큼은 아는 아이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무서워서 항의하지도 못했다.

- 다른 성추행은 없었나.

▲ (대한)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저녁 예배가 끝나고 방으로 가려는데, 000 여자 선생님이 나를 따라왔다. 복도 끝의 서랍장 앞에서 선생님은 은밀한 부위의 체모가 잘 자라는지 보자면서 내 바지와 속옷을 강제로 내렸다. "싫어요", "안 돼요"라고 했지만, 선생님의 힘이 강해서 속옷은 벗겨졌다. 선생님은 "잘 자라고 있네"라고 하고는 거실로 갔다.

- 어린 나이에 많이 놀랐을 듯하다.

▲ (대한)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겁이 난 상태에서 멍하게 잠시 있었는데, 선생님은 금방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작은 분무기를 들고 있었다. 미용실 등에서 사용하는 그런 분무기다. 선생님은 또다시 나의 속옷을 강제로 내리고는 분무기로 나의 은밀한 그 부위의 체모에 물을 뿌렸다. "꽃도 물 주면 잘 자라거든"이라고 하면서 그런 행위를 했다. 물을 뿌려줘야 체모가 빨리 자란다는 것이었다.

인천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김모씨의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가 인천 강화군 색동원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여자아이들도 이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나.

▲ (하린) 나도 성희롱을 많이 당했다. 다 같이 씻을 때 000 여자 선생님이 나의 뱃살을 만지면서 "너는 왜 이렇게 돼지냐?", "아줌마 몸 같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나의 가슴도 만졌다. 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이런 일을 당했다.

▲ (빛나) 나도 성추행을 당했다.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때 000 여자 선생님이 씻겨준다면서 나의 은밀한 부위를 만졌다. 선생님은 씻겨준다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불쾌했다. 그 선생님은 여자아이의 2차 성징과 관련한 성희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그 선생님과 씻는 것을 싫어했다.

▲ (찬인) 충분히 혼자 씻을 수 있는 나이인데, 선생님이 굳이 욕실에 와서 그런 행위를 하니 아이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제천의 A아동양육시설을 포함한 아동집단수용시설에서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 생존자들의 진상규명 신청서를 취합해 진화위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4명의 아이가 한 선생님의 팔과 다리 하나씩 맡아서 안마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하는데.

▲ (루아) 나는 북채나 난타채, 색연필을 여 선생님 종아리 등에 굴려서 안마하기도 했다.

▲ (하린) 어떤 여자 선생님은 나에게 종아리와 어깨 등에 오일을 바른 다음에 색연필을 굴리라고 했다.

▲ (대한) 내가 했던 안마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모든 아이가 자는 밤에 혼자 안마해야 했다. 000 여자 선생님은 팔다리보다는 주로 엉덩이와 허벅지 쪽을 안마하라고 했다. 2시간 넘게 해야 하니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안마를 하다 졸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똑바로 하라고 했다.

- 성추행 가해자가 주로 여자인 것은 여성 보육교사가 많아서인가.

▲ (루아) 그렇다. 당시에는 보육 교사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래서 남성 가해자들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여러 문제들이 2013년 당시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것인가.

▲ (조윤환 대표) 당시 국가인권위도 이 시설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2013년 이전과 이후의 성 학대, 물리적 폭력, 정서적 학대 등을 정밀하게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인터뷰 2차 기사 질문-답변 끝)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운동장 1천바퀴 뛰게 했다…사마귀로 아이들 겁줘 뛰게 하기도"(5월11일)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에게 시설 내 작은 운동장 1천바퀴를 돌게 하기도 했다. 사마귀를 실에 묶어서 어린아이 등 뒤에 겁주는 일도 있었다. 겁먹은 아이들이 계속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육교사가 유치원 취학 전의 어린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빙빙 돌리다 휙 집어던지는 일도 있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단체 기합(집단 체벌)이 많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이상 받았다. 기본자세인 엎드려뻗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팔다리를 들고 머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한쪽 끝의 아이를 발로 차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각목 등 잡히는 대로 여러 도구를 사용해 때렸다.

감옥방에 2개월 이상 갇히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성경책을 잃거나 한자, 영어단어를 써야 했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항아리에 소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

보육원 내에서 물은 식사 시간과 취침 전의 예배 시간 외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간 외에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보육교사는 정수기용 큰 물통에 남아 있는 물을 모두 마시라고 했다. 그건 물고문이었다.

여자 생활지도사 선생님이 족집게를 주고는 자기 겨드랑이 곁털을 뽑으라고 하기도 했다. 조금 아프게 뽑으면 뒤통수를 때리거나 벽을 보고 서 있으라고 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