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치킨 업체 페리카나가 불륜 소재로 한 인공지능(AI) 광고 영상 논란에 사과했다.
논란의 영상은 프라이드치킨 부부 사이에서 양념치킨 아이가 태어나자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실망한 남편 치킨이 산부인과 의사와 또 다른 불륜을 시도하며 영상을 마무리해 온라인상에서 비난을 샀다. 게시물은 삭제 조치됐다.
최근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숏폼 플랫폼에서는 딸기, 수박, 바나나 등 친숙한 과일을 의인화 뒤 불륜이나 배신 같은 자극적인 ‘막장’ 서사를 입힌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다. 조회수 수백만회를 기록한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해외 인기 영상 조회수는 6000만회도 넘게 기록해 많은 관심을 끈다. 이처럼 과일을 주인공 삼아 자극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상이 반응을 얻자, 콘텐츠 유행의 배경과 영향에도 시선이 쏠린다. 1981년 롯데의 ‘쌕쌕 오렌지’ 광고처럼 과일을 의인화한 콘텐츠는 예전에도 많았지만, 지금과는 결이 다소 달랐다.
김경희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는 “과일·동물·사물의 의인화는 ‘새로움’과 ‘비현실성’을 통해 즉각적인 주목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영상은 의인화를 넘어 배신·불륜을 하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담은 이른 ‘막장 드라마’ 형식으로까지 확장되는 양상이다. AI 과일 ‘막장 드라마’ 콘텐츠는 해외 틱톡에서 시작해 화제를 얻자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AI로 의인화한 망고가 등장하는 해외 틱톡 영상 중 하나는 올린 지 42일 만에 조회수가 약 6900만회에 달했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하루 평균 164만여회씩 시청한 셈이다. 짧은 시간 안에 펼친 강렬한 서사로 관심을 유도하려 ‘막장 드라마’ 형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극단적 설정과 의인화의 결합은 클릭을 유도하기 좋은 콘텐츠다”라고 짚었다.
숏폼 콘텐츠 증가 배경의 이면에는 제작 환경의 측면도 있다. AI를 활용하면 실제 배우보다 초상권이나 규제 부담이 적고 제작비와 제작 시간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특히 변형이 용이해 짧은 시간 내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최신 보고서에서 생성형 AI로 제작된 중국의 숏폼 드라마 ‘흰여우’ 사례를 소개했다. 이 작품은 단 4명의 작업 인력이 시나리오 작성부터 영상 생성 기술까지 전 과정에 생성형 AI를 도입, 불과 2주 만에 전편을 만들었다. 통상 2~3개월이 소요되는 기존 중국 전통 드라마의 제작 기간을 감안하면 미디어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커다란 변화다.
연구원은 “1인 창작자가 생성형 AI 플랫폼 ‘요시 AI(有戏AI)’를 활용해 하루 한 편 AI 단편극을 만든 사례도 있다”며 “약 40만원 수준 제작비로 숏폼 드라마를 제작·유통해 약 2000만원 수익을 냈다”고 설명했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유독 숏폼에서 소비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 제작자들의 수익창출 욕구, 플랫폼 알고리즘 구조, 이용자의 소비 습관 변화가 이유다. 수익을 위해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해야 하는 제작자들은 알고리즘 선택과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다. 짧고 강한 자극을 선호하는 이용자들도 무의식적인 소비 습관에 따라 이러한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굴레에 빠진다.
연예인 박지윤도 지난 4일 인스타그램에 “연휴 내내 과일 막장 드라마 보느라 정신없는 나”라며 “요즘 이 과일 막장 드라마에 빠진 거 저뿐인가요?”라고 숏폼을 올렸다. 영상 속 박지윤은 AI 과일 ‘막장 드라마’ 영상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저도요”, “은근 중독이다”, “너무 보고 싶은데 어디서 보는 거예요?”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이같은 반응에 김 교수는 “깨어있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며 “전 연령대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AI 기반 콘텐츠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AI는 실제 인간 모델과 달리 감정을 깊이 있게 전달하지 못해 공감의 진정성이 떨어진다. 또한 이번 페리카나 광고처럼 자극적인 AI 영상을 제작하면 왜곡이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2025년에는 인공지능으로 의사 등 전문가나 유명인, 언론사, 공공기관을 사칭해 제작한 식의약품 광고가 확산하며 논란이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해 10월14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인공지능·기술을 악용한 허위·과장 광고가 SNS에서 범람한다”며 “이는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야기하는 시장 교란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부 업체는 AI를 악용해 가짜 전문가를 내세워 ‘20년 차 피부 전문의의 피부과 내부 실태 폭로’, ‘미국 교수 충격 폭로, 40시간 공복 대체 성분’ 등 거짓 정보를 유포했다. 심지어 축구선수 호날두마저 AI로 만들어 마치 불법 사이트 모델인 것처럼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불법 사이트를 언론, 공공기관이 공식 인증한 서비스처럼 속여 광고한 사례도 잇따랐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청과 공유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AI 영상이 확산하는 가운데, 당국이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누리꾼들은 지적한다.
AI로 과일 ‘막장 드라마’를 만든 인스타그램 영상을 두고 A씨는 “점점 자극적인 방향으로 AI 영상을 만드는 흐름이 이어진다”며 “영상을 접한 무의식이 어떤 일을 유발할지 무섭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