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터널 차량 화재가 남긴 질문…글로벌 기업의 한국 시장 책임과 ESG [더 나은 경제, SDGs]

지난달 20일 방한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올라 칼레니우스(Ola Källenius) 최고경영자(CEO)는 서울에서 삼성SDI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용 하이니켈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고, LG그룹과의 배터리·디스플레이 협력 관계도 재확인했다. 지난해 11월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미래전략 간담회 후 약 5개월 만의 한국 방문이었다. 당시 벤츠 측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협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시장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 의지를 강조했었다.

 

실제로 한국은 벤츠의 글로벌 주요 시장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몇몇 자동차·경제 전문 매체들은 벤츠가 한국을 단순 판매 거점이 아니라 브랜드 위상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전략적 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해 왔다. 최근 서울에서 신형 ‘C클래스’ 전기차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후 흔들린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전동화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8일 오후 1시15분쯤 부산 해운대구 장산2 터널 내부에서 주행 중 화재가 발생한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C300’의 RPM(분당 회전수) 게이지가 붉게 물든 모습(왼쪽)과 화재로 앞부분이 모두 탄 차량 모습. 출처=제보자

이러한 대외적 메시지와 달리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소비자 보호책임과 국내 자동차 안전관리 체계 전반에 다시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3월8일 오후 1시15분쯤 부산 해운대구 장산2 터널 내부에서 주행 중이던 2024년식 메르세데스-벤츠 ‘C300’ 차량이 정차 직후 화염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소유주에 따르면 사고 직전 차량 내·외부에서는 강한 기름 냄새가 발생했고, 엔진 경고등 점등과 함께 가속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는 출력 저하 증상이 나타났다.

 

차주는 화재 발생 약 4분 전 벤츠 공식 서비스센터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이러한 이상 증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차량은 터널 내부에서 급격히 속도를 잃고 멈춰섰고, 조수석 보닛 앞쪽에서 화염이 발생했다. 운전자는 즉시 차량에서 대피해 119에 신고했으며, 소방과 경찰 등이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차량은 결국 폐차 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터널 내부에서 발생한 만큼 상황에 따라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화재 이전 수개월 동안 엔진 경고등 점등과 출력 이상 증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진 탓이다. 소유주 측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차량은 화재 발생 전 공식 서비스센터에 세 차례 입고돼 수리를 받았으며, 최종 출고일은 화재 발생 전날이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서비스센터 시운전 영상에 언덕 주행 중 RPM(분당 회전수) 상승과 출력 저하로 추정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해당 차량의 구매 가격은 688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 부산 소방당국과 벤츠코리아 측은 각각 원인 조사를 진행했다. 부산 소방당국은 보고서를 통해 “전기적 원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엔진 경고등 점등과 반복된 정비 이력, 화재 직전 출력 저하 정황 등을 고려할 때 엔진의 기계적 원인 또는 전자장비 등에서 미상의 원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벤츠코리아 측은 “차량 시스템에서 사고를 유발할 만한 직접적인 기술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외부 요인에 따른 화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차주는 이후 벤츠코리아와 공식 딜러사 등을 상대로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 협의 과정에서는 차량 소유주가 자차 보험을 통해 차량가액 일부를 보상받은 만큼 추가 보상은 이중 배상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신적 피해 보상 등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화재 사고는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은 분야다. 실제로 상당수 차량 화재 사고는 ‘원인 미상’ 또는 ‘원인 불명’으로 종결되며, 제조사 역시 직접적인 결함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책임 인정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는 결함이 최종 확정된 이후뿐 아니라 화재 위험 가능성이 일정 수준 이상 확인되면 예방적 리콜과 무상점검, 소비자 안내 조치 등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사례도 존재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앞서 메르세데스-벤츠 ‘EQB’ 모델에 탑재된 배터리 화재 위험 가능성과 관련해 단계적 리콜 절차를 진행해 왔으며, 올해 들어서도 몇몇 차량에 대해 배터리 자체를 무상 교체하는 조치가 시행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차량 소유자에게 충전 제한과 실외 주차 권고 등이 함께 안내됐다. 정확한 원인이 모두 확정되기 이전에도 잠재적 화재 위험을 예방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벤츠의 화재와 소비자 안전 문제는 반복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받아왔다. 지난 2024년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EQE’ 화재는 수백대 규모의 차량 피해와 단지 내 광범위한 단전·단수 피해로 이어져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이후 일부 피해 주민과의 보상 협의가 장기간 이어졌고, 아파트 입주민 몇몇은 벤츠 행사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벤츠코리아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표시·광고 문제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지난 3월에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물론 청라 EQE 화재와 이번 부산 C300 화재는 차량 종류와 사고 원인이 서로 다른 별개의 사안이다. 다만 자동차 화재와 소비자 신뢰 문제가 반복적으로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별 분쟁 차원을 넘어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은 메르세데스-벤츠에 중요한 시장이다. ‘E클래스’ 판매량이 본국 독일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로 국내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는 높은 편이며, 벤츠코리아의 연매출은 2023년 약 7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뒤 2024년에는 5조7000억원 수준으로 공시된 바 있다. 2025년과 2026년의 연이은 CEO 방한, 서울에서의 신차 세계 최초 공개 등도 본사가 한국 시장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사고 발생 후 원인 규명과 소비자 보호 역시 글로벌 브랜드 수준에 걸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반복된 이상 증상과 화재 위험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라면 보다 적극적이고 투명한 설명과 조사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처럼 기대 수준과 사후 대응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 브랜드 신뢰 회복은 마케팅보다 실제 사고 대응 과정에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정책 방향 역시 주목된다.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는 피해구제 체계 강화, 집단분쟁 조정 활성화,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등 소비자 보호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화재처럼 인명 피해 가능성과 직결되는 결함 의심 사안은 이러한 정책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C300 화재 사고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국토교통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한국소비자원 등 관계 기관으로 이관돼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행 제도상 자동차 화재 사고는 동일 차종의 반복사례 축적이나 구조적 결함 입증이 충분하지 않으면 강제적 시정조치나 리콜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지속해서 지적됐다.

 

자동차관리법의 이른바 ‘한국형 레몬법(자동차 교환·환불 중재 제도)’ 역시 시기와 범위에 한계가 있어 출고 후 상당 기간이 지난 뒤 결함 의심 증상이 본격화되면 적용이 쉽지 않다. 특히 화재로 차량이 전소되거나 인명 피해 위험이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는 결함조사 착수 기준과 제조사의 자료 협조 체계 등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을 포함해 자동차 화재 이슈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국토부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차원에서도 제조사 대응 체계와 소비자 보호장치, 결함조사 역량 등을 보다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명 피해 발생 후 제도를 보완하기보다 사전 예방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지속가능성 역시 단순히 친환경 차량 판매나 전동화 전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품의 안전, 소비자 보호, 사고 후 책임 있는 대응, 공급망과 서비스 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 확보 역시 지속가능경영의 핵심 요소다. 지속가능경영 국제 공시 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ative)I 역시 제품 안전과 소비자의 건강·안전 영향을 주요 공시 영역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처럼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번 부산 장산 2터널 화재 사고는 아직 최종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된 ‘경고 신호’와 정비 이력, 터널 내부 화재라는 사고 특성, 그리고 최근 자동차 화재와 소비자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 등을 함께 고려하면 단순한 민사 분쟁 차원을 넘어 소비자 및 자동차 관리체계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사례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메르세데스-벤츠와 국내 관계 기관 모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책임 있는 소비자 보호와 안전관리 체계를 함께 점검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