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갈등 혼란 비추듯… 생존·연대·해방 읊조리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11월22일까지 대장정

러·이스라엘 참가에 ‘반전 시위’ 격화
심사위원 전원 사임 등 초유의 혼란도

요이 작가, 해녀 ‘숨’ 재구성… 노동 기록
마이클 주, 기술·자연 ‘연결’ 시각화

‘해방 공간’ 주제로 ‘한국관’ 기획 조성
일본관까지 관통… 사상 첫 협업 눈길
이우환·심문섭 거장들 개인전도 주목

“노 러시아(No Russia)! 노 러시아!” 핑크색 복면을 한 일군의 무리가 나타나더니 색색의 연막탄을 터뜨리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 있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앞에서 작가와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전쟁 중인 러시아의 비엔날레 참여를 비판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들은 “비엔날레가 집단학살에 공모하고 있다”며 “포용과 관용이라는 것은 공허한 환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된 요이 작가의 작품 ‘숨 오케스트라’의 한 장면. 연합뉴스

이란전쟁을 도발한 이스라엘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같은 날 수백 명의 친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관 앞에 모여 입구를 봉쇄하고 구호를 외쳤다. “‘집단학살’관(이스라엘관)은 비엔날레에서 물러나라!”

심사위원단이 전원 사임하는 등 혼란 속에서도 세계 현대미술 축제인 제6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지난 9일(현지시간)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중심으로 도시 전역에서 막이 올랐다. 11월22일까지 열리는 올해 비엔날레에는 각국에서 111명이 초대된 본 전시 ‘In Minor Keys(조금 다른 키로)’와 99개 국가관, 31개 공식 병행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작가들은 본 전시와 국가관, 병행전시에 걸쳐 작품을 전시하며 한국 미술의 깊이를 알리는 한편 세계무대로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세계 작가들 참여한 본 전시에 요이, 마이클 주 등 출격

거친 호흡소리와 흰옷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상이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두 개의 영상을 비롯해 세 점의 드로잉, 숨소리가 담긴 사운드, 해녀들이 바닷가에 모여 불을 피우고 쉬는 ‘불턱’을 형상화한 의자…. 한국 작가 요이(39)가 내놓은 작품 ‘숨 오케스트라’다.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열린 비엔날레 본 전시에서 만난 요이 작가의 ‘숨 오케스트라’는 바다가 삶의 터전인 제주 해녀들의 노동과 생존을 호흡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요이는 “해녀의 호흡은 잠수 전 조절하는 숨과 물에 들어가기 직전 한 번에 빠르게 들이마시는 숨, 물속에서 노동하며 참아내는 숨, 그리고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는 회복의 과정으로 구성된다”며 “숨소리를 통해 해녀의 노동과 생존을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예일대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은 요이 작가는 2021년 뉴욕에서 팬데믹과 번 아웃을 겪은 뒤 제주로 이주했고 우연히 해녀의 집에 거주하며 해녀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제주 공동체와 교류하며 해녀의 ‘숨’을 노동·관계·생존을 잇는 언어로 해석해 작업으로 풀어냈다.

한국계인 마이클 주(60)와 갈라 포라스-김(39) 작가도 본전시에 참여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작가인 마이클 주는 수집한 대형 화석판을 모빌로 구성한 작품과 인공 산호초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병치해 기술과 자연의 생태계를 연결한 두 작품을 선뵀다.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인 갈라 포라스-김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과 협업으로 구성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최재은은 일본관, 조국현은 탄자니이관, 홍은주는 대만관 전시에 협업 작가로 참여했고, 로터스 강은 불가리 파빌리온의 첫 작가로 선정돼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선보였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을 꾸민 노혜리 작가의 작품 ‘베어링’ 내에 설치된 한강 작가의 작품 ‘퓨너럴’. 연합뉴스

◆해방공간 재구성한 한국관, 한강 작품도 선봬

한국관 외부부터 내부까지 붉은 동 파이프가 박혀 있다. 한국관을 지키는 거대한 요새이자 막힌 혈을 뚫어주는 침과 같은 모습이다. 더구나 한국관에서 뻗어 나온 동 파이프는 수풀 아래를 지나 일본관으로도 스며든다. 국경처럼 나뉜 국가관 사이를 혈관처럼 연결한다.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관은 최빛나 예술감독의 기획 아래 노혜리, 최고은 작가가 참여해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를 주제로 한국관을 해방공간의 요새와 둥지로 구성됐다.

전시를 기획한 최빛나 예술감독은 “부당한 권력과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며 “일제강점기부터 독재와 계엄 정국을 이겨낸 역사적 해방을 기념하고, 새로운 주권 개념의 실천을 만들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운동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관을 요새로 꾸민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동파이프를 자르고 구부리며 한국관 외부와 내부를 관통하고 가로지른다. 이는 ‘요새’에 가까운 형상이지만 동시에 유려하고 유연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감각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노혜리의 작품 ‘베어링(Bearing)’은 4000여 개의 오간자(얇고 빳빳하며 속이 비치는 직물)로 한국관 내부를 둥지로 꾸몄다. 둥지 안에는 애도, 기억, 전망, 생활 등 8개의 스테이션을 만들었다. 각 스테이션에는 농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 등이 ‘펠로우’로 참여한 가운데 ‘애도’ 스테이션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설치 작품 ‘더 퓨너럴(The Funeral·장례식)’이 전시됐다.

 

베네치아 자르디니 내 한국관의 모습. 연합뉴스

◆거장 이우환 심문섭 등 개인전도 곳곳에서

국가관 밖 전시장에서는 단색화 거장 이우환과 조각가 심문섭 등이 개인전을 열고 세계 미술계와 교감하고 있다. 이우환은 산마르코 광장 내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이우환’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8일 미국 뉴욕 디아비컨미술관에서 시작한 대규모 개인전을 베네치아로 확장한 것이다.

8개 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회화와 설치, 장소 특정적 작업을 통해 지난 70여 년간 구축해 온 작가의 시각 언어와 철학의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제시카 모건은 외신 인터뷰에서 “이우환 작업 전체의 궤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며 “그는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조각 개념을 재정의해 온 한국 실험미술 1세대 작가 심문섭은 베네치아 카 파카논에서 개인전 ‘심문섭: 하네스트 프롬 네이처(Harnessed From Nature·자연에서 길어 올린)’를 열고 있다. 심문섭은 이 전시에서 조각과 설치, 회화 등 총 28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 부산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윤송이는 아트 NYC 재단 주최로 개인전 ‘시간을 초월한 노래들’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별세한 ‘거꾸로 회화’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전시가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섬에서 열리는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개인전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인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도 팔라초 만프린에서 대형 설치와 건축 모형을 선보였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미술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