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2005년 첫 내한 이후 다섯 번째 내한 무대에 프랑스어로 ‘호수’를 뜻하는 ‘라크(LAC)’를 올렸다. 클래식 발레의 정점 ‘백조의 호수’를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새롭게 만들어 2011년 모나코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1993년부터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이끌며 45편 이상을 만들어온 마이요의 철학은 ‘서사 발레(narrative ballet)’. “나는 발레에서 서사에 관심이 있고 무용수의 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라크’는 이런 철학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왕자가 반려를 찾는 파티가 열리는 1막, 행복해 보이던 왕실은 밤의 여왕 무리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등장하는 순간 위태로운 공간으로 바뀐다. 긴장의 절정은 왕과 밤의 여왕, 왕자와 흑조의 이중 파드되(사진)다. 왕을 유혹하는 밤의 여왕과 왕자를 뒤흔드는 흑조의 춤은 노골적인 유혹의 몸짓이다. 마치 그림자 춤처럼 두 커플이 같은 춤을 추는데 왕과 왕자는 허수아비와 같다. 이를 지켜보는 왕비는 남편과 아들을 유혹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나 힘이 부족하다.
행복한 궁정에서 벗어난 2막에서 ‘라크’의 심연은 실체를 드러낸다. 흑백 영상에 등장했던 추억의 첫사랑 소녀가 자신임을 왕자에게 알리려 애쓰나 왕자에겐 닿지 않는다. 해가 저물자 백조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고 비로소 첫사랑을 알아본 왕자와 백조의 이인무는 고전 발레의 파드되에 현대적 몸짓을 결합했다. 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천진무구한 연인의 모습이 고전 발레 동작과 조합되면서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마이요의 ‘라크’ 3막은 다시 궁정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군무가 이어지며 모두의 시선 속에 백조로 분한 흑조가 짝짓기를 위한 춤을 춘다. 왕자는 흑조에게 사랑을 바친다. 뒤늦게 나타난 백조는 실망해 무도회장을 떠나고 왕자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는다.
파국의 끝은 왕비의 복수다. 왕과 치정 관계였던 밤의 여왕의 딸이자 왕실을 속인 흑조를 왕비가 교살한다. 서사에 진심인 마이요는 작품 내내 객석 박수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차이콥스키 원곡을 마이요 동생 베르트랑이 속도감 있게 편집했을 정도다. 대단원은 다시 호숫가에서 벌어진다. 호숫가로 백조를 찾아온 왕자와 친구들은 밤의 여왕 무리에 맞서 백조를 되찾으려 한다. 전투 같은 군무의 대결 끝에 왕실의 부정, 사랑과 복수, 욕망 등이 모두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 사라진다. 지난주 화성·서울예술의전당에 이어 20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마지막 공연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