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명예교수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이 2007년 5월 25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0년 5월 29일에 출생하였으니 그가 그토록 예찬하였던 오월에 태어나서 오월에 유명을 달리한 셈이다. 다수의 언론 매체들이 그에 대한 부음 기사를 쏟아냈다. 모 신문에서는 그를 ‘영원한 소년’이라고 불렀고 모 방송에서는 ‘수필계의 거목’이라 불렀다.
시인 노천명을 비롯한 많은 문인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계절의 여왕 오월은 1980년을 분기점으로 푸른 하늘을 잃어버렸다. 특히 대학가는 슬픔과 분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필자 역시 5월이 올 때면 ‘결의의 시점’으로 여겼다가 겁나(怯懦)로 인해 금세 무너져 내리곤 하였다. 지인들의 고통에 아파하면서도 당당한 행위로 옮기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시절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빠져 살던 필자가 그의 수필 ‘오월’을 읽기가 부담스러웠다. 순수라는 게 현실도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에게 ‘금아’ 즉 “거문고 타는 아이”라는 뜻의 호를 지어준 이광수의 존재가 불편했다. 이광수는 일제 말기 글과 강연을 통해 조선의 많은 청년들에게 일본군 지원을 권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인연(因緣)’을 읽은 뒤부터는 프랑스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 빠졌고 춘천 소양강 가을 경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여느 사전이든 간략한 설명만 붙어 있으나 ‘인연’은 왠지 운명적인 관계 같은 느낌의 단어로 다가왔다. 이후 청년기에는 ‘인연’을 종종 읽으면서 아사코(朝子)를 통해 패전 직후 일부 일본 여성의 시들어간 삶을 반추하였다. 그리고 곧 6·25전쟁 직후 한국인 여성의 삶에 눈길이 갔고, 일본인을 일본인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개별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