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나 돌아갈래! [S스토리-관리 부실 비집고… 탈출하는 동물들]

코끼리부터 퓨마·말레이곰·얼룩말·침팬지·늑구까지
끊임없는 탈출 행렬… 무사히 생포되기도 하지만 사살되는 경우도 많아

시설 부실관리 큰 원인… 열악한 환경에 스트레스 받은 동물들
울타리 배회… 사육사가 문 단속 소홀히 한 틈타 도망

단순히 수용·전시 넘어 동물복지·생태적 관점서 운영 필요
‘노아의 방주’ 역할하는 日 생크추어리 동물원 본받을만

“산소 주세요, 산소! 일단 빨리 옮깁니다! 완전히 일어나지 못하니까 (박스 덮개는) 열어둔 채로 이동할게요.”   

 

지난달 17일 0시44분 대전 안영IC 인근의 한 수로. 대전 오월드를 탈출해 9일간의 필사적인 도주를 이어가던 수컷 늑대 ‘늑구’(2살)를 포획하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지난 4월 8일 대전 오월드에서 빠져나간 늑대 ‘늑구’(2살)가 9일 만에 생포됐다. 대전 CBS 영상 캡처

“탁!” 늑구는 허벅지에 마취총을 맞고도 악착같이 버텼다. 약 기운이 퍼지는 와중에도 6분여 동안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발버둥 치던 녀석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축 늘어진 채 수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수로에 고인 얕은 물조차 축 늘어진 늑구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자칫 질식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 현장 대원들은 늑구의 귀와 덜미를 움켜잡고 순식간에 물 밖으로 끌어올렸다. 사지가 들린 늑구는 의료용 박스로 긴급히 옮겨져 오월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헐거워진 사육장 땅을 파헤치고 탈출했던 늑구. 무수동에 있는 오도산의 기슭에서 한국효문화진흥원 뒷산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천만한 도로까지 가로질러 달렸다. 아흐레를 버틴 늑구 도주의 끝은 탈출지점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1.9㎞ 떨어진 안영IC 인근 풀숲 수로였다. 

 

늑구가 가족이 있는 대전 오월드 사육장으로 돌아간 지 한 달째. 건강을 회복한 늑구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 다시 적응 중이다. 

 

◆“나 나갈래”… 부실 관리 틈타 탈출하는 동물들

 

늑구가 탈출한 건 지난달 8일 오전 9시18분쯤이다. 오월드 측은 “늑구가 사파리 울타리 밑 땅 30㎝ 정도를 파고 빠져나갔다”고 했다. 한동안 오월드 내부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늑구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자 같은 날 오전 11시30분쯤 오월드 밖으로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오월드 관계자들은 폐쇄회로(CC)TV로 늑구가 사육장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탈출한 지 1시간여가 지난 늑장 신고였다. 8년 전 오월드에서 기르던 암컷 퓨마 ‘뽀롱이’(당시 8살)가 탈출 4시간30여분 만에 시민 안전을 이유로 사살된 이후 ‘늑구 생포’ 여론이 일었고 늑구는 살아 돌아왔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탈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일엔 경기 광명시 한 사슴농장에서 사슴 5마리가 탈출했다. 이달 10일에는 경북 포항시 환호공원 간이동물원 사육장에서 일본원숭이 2마리가 열린 문으로 탈출했다. 빠져나간 지 3시간여 후와 다음 날 오전 모두 구조됐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2023년 3월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2019년생 수컷 얼룩말 ‘세로’가 사육장 울타리 나무데크를 부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3시간가량 시내를 활보하던 세로는 3시간여 만에 생포돼 동물원으로 복귀했다. 세로의 탈출 배경엔 부모가 죽은 후 누적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같은 해 8월엔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에서 침팬지 ‘알렉스’(암컷)와 ‘루디’(수컷)가 내실을 청소 중인 사육사를 밀치고 탈출했다. 이들 침팬지는 2시간여 만에 모두 붙잡혔으나 마취총을 맞고 포획된 루디는 회복 중 기도 폐쇄로 질식사했다.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말레이곰 ‘꼬마’가 사육사가 방사장을 청소하는 사이 앞발로 철문의 문고리를 직접 열고 탈출했다. 꼬마는 9일간의 자유를 만끽하다 붙잡혀 돌아왔다. 2009년 8월엔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에 있던 늑대 ‘아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됐다. 2005년엔 서울대공원에서 행사를 위해 이동하던 코끼리 6마리가 갑자기 날아오른 비둘기떼에 놀라 집단 탈출했다가 4시간 만에 붙잡혀 돌아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물원 환경 개선은 물론 사육방식도 바뀌어야  

 

동물원 사육 동물들의 잇단 탈출은 대부분 사육사가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는 등의 관리 부실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애초 야생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에버랜드와 서울대공원 등에서 볼 수 있는 호랑이는 먹이를 찾아서 하룻밤에 80∼100㎞를 돌아다닌다. 급한 산비탈이나 바위도 잘 오르내리는 특성이 있다. 

 

야생 동종 개체의 행동권과 비교하면 사육장은 0.001%도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능적으로 울타리가 뚫려 있거나 쓰러지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동물원 동물이 울타리를 따라 끊임없이 배회하는 이유다. 최현명 청주대 교수(동물보건복지학)는 “동물원의 동물은 ‘노동’을 박탈당했다”며 “야생동물의 삶에서 먹이를 찾고 사냥을 하는 일상을 동물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늘 스트레스를 갖고 살며 그것이 탈출을 꿈꾸게 한다”고 지적했다. 

 

작금의 백화점식 동물원 사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 조언이다. 그는 “전시 동물 종 수집에 집착하면 안 된다”며 “동물원에 종이 많다는 것은 각종의 전시장이 협소하다는 것이고 이는 동물의 스트레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동물의 행동화 프로그램을 더 자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그는 “곰 우리의 풀에 진흙이나 잔자갈을 깔고 미꾸라지를 넣어주면 (곰) 행동이 풍부해질 수 있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천편일률적인 동물원을 특정 종 특성에 맞게 특화하거나 전시·오락 이외 새로운 기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 교수는 “토종동물만 있는 토종동물원, 사막동물만 있는 사막동물원 등 전국 동물원을 종의 특성에 맞게 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원의 역할에 대해선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구조, 사육, 증식, 방사 및 습성·생태 연구 기능이 추가돼야 한다”며 “교육과 유희를 적용한 ‘사회복지 시설’ 개념으로 바뀔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생태계 보전 위한 ‘노아의 방주’ 기능도 필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공영동물원을 중심으로 동물복지를 논의하는 협의체를 꾸렸다. 전국공영동물원협의체는 동물원의 안전관리와 동물원 허가제 이행을 점검한다. 협의체에는 유역환경청, 국립생태원,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 전국 공영동물원 관계자 등이 참여한다. 

 

환경단체도 동물 수용을 넘어 생태적 관점에서 동물원 운영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늑구는 오랜 기간 사육 환경에서 지내왔는데도 이번 탈출 과정에서 땅을 파는 야생성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늑구 탈출 사건은 동물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물을 가두고 전시하는 현재의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 그리고 생태적 보전과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동물원이 멸종위기종의 ‘보존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주문하고 있다. 대전환경련은 “단순히 동물을 가두어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식지 파괴로 사라져 가는 종들을 연구하고 번식시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노아의 방주’처럼 생태계 보전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하는 일본의 생크추어리 동물원 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