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칸 상영은 리허설일 뿐, 아직도 전쟁 같은 수정 중… ‘호프’ 블록버스터 아냐” [2026 칸 라이브]

칸에서 ‘호프’ 공개한 나홍진
“칸 상영은 테크니컬 리허설…
사운드·비주얼 수정 전쟁 한창
불길한 시대 감각, ‘호프’의 바탕”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가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그러나 감독에게 이 영화는 아직 ‘완성작’이 아니다. 영화는 공개 4일 전까지도 후반 작업을 이어갔다.

 

나홍진 감독.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18일 칸 호텔 바리에르 르 마제스틱에서 만난 나 감독은 “사운드, 비주얼 각 파트가 거의 지금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개봉을 약 한 달 반 앞둔 시점까지도 수정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2300여 석 규모의 뤼미에르 대극장 상영조차 그는 “테크니컬 리허설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전날 열린 월드 프리미어에 대해서도 “보고 나니 편집을 다시 손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며 취재진에게 되묻기도 했다. “뭐 (편집)했으면 좋겠습니까?”

 

“아직 완성이라는 말을 쓰기엔 그렇습니다. 여전히 진화 중인 영화예요. 처음부터 모든 걸 짐작으로 설계하고 만든 작품입니다.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가듯 구조를 만들었어요. 일반 영화처럼 촬영이 끝나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구조가 아니라서, 지금도 이것이 제대로 성사된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호프’는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크리처 영화지만, 정작 관객은 영화 초반 50분 동안 그 존재를 거의 보지 못한다. 대신 황정민이 연기한 범석이 괴물의 흔적을 따라가며 벌어지는 사건과 압도적인 음향이 서사를 끌고 간다. 괴물은 가까이 나타난 듯하다가도 반복적으로 사라지며 긴장을 유지한다.

 

나 감독은 이 구조를 “미스터리가 계속 전진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미스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자꾸 그걸 방해하죠. 관객이 미스터리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너무 착하고 단순한 구조가 되는 걸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이상한 장면들도 끼워 넣었어요.”

 

실제로 영화에는 본선 서사와 무관해 보이는 코믹한 장면과 엉뚱한 삽화들이 이어진다. 임현식의 만담에 가까운 장면이나 황석정의 ‘톱질’ 장면 등은 긴장감을 해체하는 동시에 다시 끌어올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나 감독 특유의 악취미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 앞서 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범죄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우주적 상상으로 확장됐다고도 밝히기도 했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곡성'에서는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이 나왔다면, 전작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지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외계인이 나왔고, 그게 우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착상하고 집필하던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특정 사건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만, 전반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있었어요. 뉴스나 국제 정세를 보면 전 세계가 불안하고, 폭력이 무자비하게 세상을 덮을 것 같은 감각이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이야기도 나오던 시기였고요. 그런 감각이 시나리오의 바탕이 됐습니다.”

 

‘호프’ 출연진과 칸 해변에서 포즈를 취한 나홍진 감독(왼쪽 네 번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추격자’, ‘황해’, ‘곡성’에 이어 ‘호프’까지 그의 장편 연출작은 모두 칸 영화제에 초청됐다. 다만 이번처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앞선 세 작품은 모두 국내 개봉 이후 초청된 경우였다. 나 감독은 이 차이를 언급하며 “페스티벌에서 프리미어를 해보는 건 처음인데 이렇게 떨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분이 좋고, 영광스럽고, 뭔가 다 끝난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 건 처음입니다. 경쟁작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쁩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몇 가지 알 듯 말 듯 한 말을 던졌다. 하나는 영화 제목 ‘호프’에 대한 것. 처음에는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어로 그대로 쓰기엔 어색해 영어 ‘HOPE’를 택했고, 극 중 공간인 동네에 이름을 지어야 하니 ‘호포(虎浦)’라고 설정한 거라고. “모두가 크든 작든 각자의 희망을 품고 살지만, 이 영화는 그 희망들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라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