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HOPE)’가 17일(현지시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가운데, 영화 상영 중 드물게 터져 나온 박수와 환호가 있었다. 순경 ‘성애’(정호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다. 장총을 든 채 경찰차 문을 열고 성애가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뤼미에르 대극장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오프닝 때 함성이 나오거나 상영 종료 후 기립박수는 흔하지만, 상영 도중 특정 장면에서 이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 잡은 정호연의 존재감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먼저 관객의 반응을 끌어낸 것은 캐릭터 자체의 설계였다. 앳된 얼굴의 젊은 순경이 거대한 장총을 자연스럽게 다루며 등장하는 대비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호연은 성애를 연기하기 위해 약 5~6개월간 체계적인 체력 훈련과 액션 준비를 거쳤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을 약 4㎏ 늘렸고, 총기 훈련을 받았다. 카체이싱 장면을 위해 수동 운전면허까지 취득했다. 드리프트와 급가속·급정지 등 차량 액션을 연마해 대부분 장면을 직접 소화헀다.
18일 칸 호텔 바리에르 르 마제스틱에서 만난 정호연은 첫 카체이싱 촬영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오래, 열심히 준비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때 황정민 선배님이 ‘성애야, 그냥 자신 있게 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순간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어요. 그 말 덕분에 모든 촬영을 기세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 ‘기세’는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졌다. 가녀린 체구의 캐릭터가 거대한 총과 차량 액션을 소화하는 과정에서도 흔들림이나 버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성애는 호포항을 지키는 순경으로, 외계 생명체가 마을을 초토화하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다. 선악의 기준이 분명하고, 불의 앞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성격을 지녔다.
정호연은 캐릭터의 핵심을 ‘선의’라고 설명했다. “대본 리딩 중 나홍진 감독님께서 이 영화로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성애는 그중에서도 인간의 선의를 담고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선의’로 잡고 만들어갔어요.”
외계 생명체가 주민들을 도륙하고 동네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와중에도 성애는 겁을 먹는 대신 분개한다. 그녀는 ‘저놈들이 선을 넘었다’며 성을 낸다. 정호연은 성애의 격렬한 분노 역시 강한 정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분노한 성애이기에, 영화 속에는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운전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차량 엔진 소리와 음악 소리를 뚫고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높은 톤으로 연기했다.
인터뷰 중 그는 나홍진 감독에 대한 신뢰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가 믿은 것은 무엇보다 ‘시간의 힘’이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수년 동안 쓰셨고, 프리프로덕션만 2년 정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시간이 결국 작품을 만든 힘이라고 생각해요.”
정호연에게 ‘호프’는 출연작 한 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스크린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입하는 영광을 얻게 됐다. 레드카펫을 밟은 소감을 묻는 말에는 그는 “명확한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도 이 감정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행복하면서도 ‘이 감정에 단어가 있다면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 잘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었어요. 지금도 사실 딱 이름을 붙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는 객석에서 터져 나온 박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우를 계속해도 되겠다는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