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상가에 곧잘 가던 일식집이 있었다. 실내가 넓고 테이블 간격이 적당한 데다 런치 코스의 가성비가 좋아 가족들과 자주 갔다. 마지막에 콩가루를 뿌린 ‘젤라또’를 먹다 누군가 기침을 쏟아냈고, 그걸 보며 모두 깔깔 웃는 게 식사의 마침표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식으로 단골이 되어 오 년, 십 년쯤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부터 코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싼 회가 조금 덜 비싼 회로 바뀌었다가 눈에 띄게 저렴한 회로 바뀌는 걸 보며 가족이 말했다. “이제 여긴 못 오겠다.” 후토마키와 카이센동의 구성이 허술해지고 아무 설명 없이 메뉴가 대체되는 상황이 이르러서는 아쉬운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가게는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가게가 좀처럼 정리되지 않고 간판에 줄곧 불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다. 출입구가 유리문이어서 실내 곳곳이 환한 게 그대로 보였다. 오픈 키친 위쪽 조명과 테이블 윤곽선을 따라 빙 둘러진 할로겐등은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 심지어 가게 한 켠에 놓인 수족관의 산소발생기까지 켜져 있었다. 가게는 그 상태 그대로 석 달, 반년을 훌쩍 넘겼다. 몇 달이 지나서야 물이 바짝 졸아든 수족관의 기계가 꺼진 게 전부였다.
나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불안하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름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모든 것이 저토록 오래 방치되어도 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전기료는 스위치를 내리지 않은 사람의 몫이라 해도 불필요한 낭비에 화재 위험은 없는 건지 불안했다. 무엇보다 출입구 바로 앞에 놓인 커다란 화분에 마음이 쓰였다. 식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실시간으로 말라 죽고 있는 식물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기억에 따르면 실내 안쪽 선반에도 화분이 여러 개 놓여 있었는데, 꽉 닫힌 문안에서 그 모두가 죽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