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거점을 둔 자금세탁 범죄조직에게 계좌당 1500∼2000만원을 받고 대포통장을 공급한 대포통장 유통조직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대포통장을 유통한 뒤 계좌가 지급정지되면 금융기관이나 피해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해제를 요청하는 등 ‘애프터서비스(AS)’도 수행했다. 경찰에 검거된 두 조직이 테더(USDT) 코인, 상품권, 환전 송금 방법으로 세탁한 범죄수익금은 약 11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조직 총책 등 149명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 중 가담 정도가 중한 7명은 구속 송치했으며, 핵심 조직원 27명에 대해선 형법상 범죄단체조직·활동죄를 추가 적용했다.
◆대포통장 공급하다 자금세탁에도 가담
경찰에 따르면 국내에서 대포통장을 유통하는 A조직은 2024년 3월 지역 선후배 등으로 구성된 범죄단체를 조직해 지난해 5월까지 다른 범죄단체에 대포통장을 공급했다.
A조직은 각 지역의 은행을 돌면서 대포통장을 개설했다. 1일 이체 한도가 100만원인 신규 계좌의 한도 제한을 해제하기 위해 허위 세금계산서·물품공급계약서 등을 작성해 은행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개설된 대포통장은 계좌당 1500∼2500만원을 받고 다른 범죄조직에 공급했으며, 자신들이 공급한 계좌가 지급정지되면 허위 차용증을 금융기관에 제출해 지급정지 해제를 시도했다. ‘사후관리’까지 맡은 것이다.
중국 심천 지역에 거점을 둔 자금세탁 범죄조직(B조직)에 대포통장을 공급하던 A조직은 지난해 3월부터 하부 조직원들을 현지로 직접 파견해 자금세탁 범행에 가담시키고 범죄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범행 수법을 고도화했다.
A조직이 B조직에 공급한 대포통장에 입금된 범죄수익금은 총 310억원, B조직이 사용한 대포통장에 입금된 범죄수익금은 총 860억원 상당이다. 대부분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사기, 리딩사기로 인한 피해금이다.
이들은 경찰 수사에 대비해 텔레그램 대화방을 만들어 준비했고, 대화방 캡쳐본을 수사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조직적인 범행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구글 광고 텔레그램 아이디를 보고 1대 1 대화방에서 대출을 받으려다가 속아서 계좌를 개설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경찰은 20대 후반인 A조직의 총책 2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리 대상인 3개 폭력조직의 조직원 8명도 A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검거됐다.
일명 ‘왕회장’이라고 불리는 B조직의 총책은 중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왕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 및 여권 무효화 조치한 상태다.
◆자금 세탁 대세 된 ‘테더 코인’ 점검해야
코인 송금, 상품권 업체 가장, 기타 계좌이체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송금·인출책 116명에게는 특정금융정보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코인 송금책은 자신의 계좌로 피해금을 받아 코인을 매입한 후 송금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송금책은 입금 금액의 1∼3%, 거래실적 대비 1000∼5000만원 상당의 ‘대출 지원금’을 대가로 약속 받았다. 가장 많은 금액을 송금한 사람은 36억원을 송금했는데, 3000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받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코인 송금책의 대부분(62%)은 20∼30대였다.
자금 세탁 유형으로는 테더 코인(USDT)을 이용한 비율이 72%에 달했다.
박구락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6계장은 “(범죄수익이) 해외거래소로 이동해 해외 통화로 환전돼 버리면 추적이 어려운 점 때문에 코인을 이용한 자금세탁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강화된 출금지연 제도가 시행 중이나 가상자산을 활용한 피싱 범죄수익금 세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관계당국은 가상자산 거래소 현황 파악과 지속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금지연 제도는 신규 이용자 등이 매수한 가상자산을 외부로 출금하는 것을 72시간 동안 제한하는 제도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범죄수익금 13억8000만원 상당을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