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파업을 하루 앞둔 20일 최종 담판에서도 합의에 실패했다. 핵심 쟁점은 성과급 배분 방식이었다. 사측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한다’는 삼성의 성과주의 원칙을 고수했고, 노조는 적자 사업부를 포함한 부문 중심 배분 확대를 요구하며 맞섰다. 노사 협상이 결렬되면서 이제 관심은 정부가 긴급조정권 카드를 꺼낼지에 쏠리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노조가 주장한 영업이익 배분 비율이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경영철학인 성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됐기 때문이다. 노사는 마지막 핵심 안건이었던 ‘성과급 배분 비율’을 놓고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부문 70%, 사업부 30%의 배분 비율을, 사측은 성과주의 원칙에 부합하게끔 비율을 부문 40%, 사업부 60%로 가는 안을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합의 불발 배경에 대해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규모와 내용 대부분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사업부에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규모의 보상을 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며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의 기본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어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회사 경영의 기본원칙을 포기할 경우 다른 기업과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성과급 배분 비율을 끝까지 고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반도체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같은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안에서도 막대한 흑자를 내는 메모리 사업부와 적자에 허덕이는 시스템LSI·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가 공존한다. 노조 측의 주장처럼 부문에 70%에 달하는 성과급 재원이 투입될 경우 적자 사업부 직원들도 흑자 사업부와 거의 동일한 성과급을 받게 돼 성과주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에게 있어 성과주의는 단순한 인사정책을 넘어 ‘경영철학’으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본격화한 성과주의는 학연과 지연을 타파하고 능력 중심의 파격 보상과 인사를 도입해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핵심 경영철학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개인과 조직의 실적에 따라 파격적인 보상을 차등지급하는 성과주의 시스템을 통해 확실한 보상체계를 만들었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인재 쟁탈전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현재 정부는 긴급조정권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이 공표되면 30일 동안 쟁의행위는 중단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15일간 조정 및 중재 절차를 진행한다. 노·사·공익위원 각 1인으로 이뤄진 조정위원회가 조정을 맡는다. 조정이 성립되면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이후에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익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중재 여부를 결정한다. 중노위 측은 “(이후 절차는) 박수근 중노위원장을 포함해 공익위원 20명가량이 있어 이들 의견을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반도체 공정 특성을 고려하면 파업 돌입 즉시 긴급조정권을 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이날 즉시 긴급조정권이 발동될 시 내달 3일 지방선거 직후인 4일 중재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로서는 긴급조정권 발동 시점 따라 선거 영향도 클 수 있어 시기 고민에 더 신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재재정은 강제력을 가지며, 이 역시 조정과 같은 단체협약의 효력을 지닌다.
노·사가 정부의 조정 및 중재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노측에서 행정법원에 긴급조정권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 중에도 30일 파업 금지 효력은 유지되는데 이를 무력화하려면 행정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해야 한다.
과거 4차례 발동된 긴급조정권 중 2번은 노사 합의로 파업이 종료됐다. 나머지 2번인 2005년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의 강제 중재로 마무리됐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76조에 근거해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결정권자인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고심이 깊을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김 장관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 마지막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2005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때 철도노조 위원장이었다. 당시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자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은 연대 파업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현재도 양대노총은 긴급조정권 발동 시 연대를 시사한 상태다. 이 때문에 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공표하게 되면 자신의 뿌리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반노동 기조로 돌아섰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