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4시 25분쯤, 경기 수원시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소회의실 공기는 무겁고 팽팽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여명구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등 노사 양측 교섭위원과 마주했다.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마지막 담판으로 열린 3차 사후조정 회의가 최종 불성립되고, 노조가 “예정대로 21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지 5시간가량 지나 마련된 자리다. 중노위의 공식적인 조정이 아닌 ‘자율 교섭’의 자리였지만 긴장감이 가득했다. 국가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긴급조정권 발동’ 권한을 쥔 김 장관이 직접 나서 노사를 다시 한번 불러 모으며 파업을 막기 위한 ‘마지막 6시간’의 긴박한 드라마가 시작됐다.
앞서 중노위와 노사가 오전 11시쯤 3차 사후조정 결렬을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파업 전운이 짙었다. 지난 18∼19일 2차 사후조정을 통해 성과급 재원과 제도화 부분에서 상당 부분 이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져 중노위 안팎에서 타협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사는 또하나의 핵심 쟁점인 ‘반도체 부문 내 적자 사업부에 지급할 성과급 규모’ 부분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국 이날 3차 사후조정에서도 빈손으로 물러났다. 박수근 중노위원장이 “비록 이번 조정이 최종 합의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노사가 합의해 사후조정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조정을 개시해 노사 교섭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공허하게 들렸다. 최 위원장이 중노위 회의장을 나오며 바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할 만큼 노사 불신이 상당한 것으로 비쳐져서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노조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꼬집는 듯한 강한 발언으로 대화와 타협을 압박하고 김 장관이 직접 중재자로 나섰다. 김 장관은 공식 조정 절차가 종료되었음에도 “자율 교섭 형식을 빌려서라도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노사 양측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에서 수원으로 바뀐 교섭장에는 노측 대표교섭위원인 최 위원장과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 팀장, 중재자로 나선 김 장관 등이 자리했다. 노사 간 자율교섭을 김 장관이 주선하는 것으로, 중노위 차원의 사후조정과 달랐다. 노동부는 “이 교섭은 노사 당사자 간의 교섭이며 김 장관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재안이나 강제력을 띤 조정안이 없는 자율 교섭이었던 만큼 결과를 장담하긴 힘들었다.
오후 8시가 넘어가자 협상장 밖에도 긴장감이 전해졌고, 일각에선 협상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김 장관은 노사 양측을 상대로 ‘파업으로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추면 국민·국가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이라며 한발씩 양보하도록 간곡히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적 같은 반전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찾아왔다. 사측은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노조 비판 공지문을 스스로 삭제하며 타결 임박 신호를 보냈고, 뒤이어 노사 대표가 마침내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핵심 쟁점이었던 성과급 상한제 폐지와 적자 사업부 보상 규모에 대해 사측이 올해에 한해 ‘특별 경영 성과 포상금’ 형태로 지급액을 상향 조율하고, 노조가 이를 수용하는 선에서 극적인 대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회의 중 양측에 주요 쟁점에 대해 여러 대안을 제시하며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도록 설득한 김 장관의 공이 컸다.
잠정 합의안이 도출되면서 21일 예고된 총파업은 일단 유예됐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협상 타결 직후 조합원 대상 투쟁지침을 통해 “5월 21일~6월 7일 총파업은 추후 별도 지침 시까지 유보한다”고 공지했다. 이어 “전 조합원은 23일 오전 9시부터 28일 오전 10시 진행되는 2026년 임금협약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에 참여한다”고 통보했다.
파국 직전 멈춰 선 삼성전자 노사의 이번 자율 타결은 ‘공공의 이익’과 ‘노동권’의 극단적 대립을 공권력(긴급조정권) 투입이 아닌 정부의 적극적인 자율 중재로 해결한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