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46회) 팔렌시아 :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산 안톨린 대성당 입구. 필자 제공

팔렌시아는 스페인 중북부 지역의 작은 도시다.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켈트-이베리아계 부족인 바카이족이 살던 곳이었다. 로마가 이베리아반도에 진출하자 그들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다가 로마제국의 속주인 팔란티아로 편입되었고, 로마 제국의 중요한 식민지가 되었다. 그 연혁이 깊은 만큼 교통의 요충지이자 중요한 직물 제조업의 중심지였고, 중세 시대에 가장 큰 번영을 누렸다. 알폰소 8세 재위 시절에는 왕실 거주지 중 하나였고, 1208년에는 스페인 최초의 대학인 팔렌시아 대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산 안톨린 대성당 내부. 필자 제공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팔렌시아 대성당으로 불리는 산 안톨린 대성당이다.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라는 멋진 별칭을 가진 이 성당은 예술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고딕 양식이다. 14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16세기에 완성되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가 바로크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된 이 성당은 1929년 스페인의 국가 유적으로 지정될 정도로 중요한 건물이며,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겉모습만큼 내부에는 놓치지 않고 꼭 봐야 할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알론소 베루게테, 엘 그레코, 수르바란 등 궁정화가들의 작품들이 갖춰져 있다. 

 

엘 그레코 作.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Museo Catedralicio de Palencia 소장

대성당의 대기실과 회의실을 겸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엘 그레코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의 주인공은 나무에 묶여 있는 성 세바스티안이다. 순교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완전히 서 있는 포즈가 아니라 무릎을 굽힌 듯한 포즈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미켈란젤로 등 다른 거장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구도를 변형한 것으로 해석된다. 길쭉하고 뒤틀린 신체 비례 묘사는 엘 그레코가 가진 특유의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보여주지만, 후기 작품들보다 근육질의 신체 묘사가 더 사실적이고 육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짙고 폭풍우가 치는 듯한 어두운 배경은 성인의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이 그림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정착한 후 그린 첫 번째 남성 누드화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 거리 성당 입구. 필자 제공

스페인의 중요한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또 다른 곳인 성모 마리아 거리 성당(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까예)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고 아담한 이 성당은 독특하게도 예수회가 건립하였다. 1584년에 짓기 시작해서 1599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겉에서 보면 종탑이 솟아 있는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3단 파사드를 갖춘 전통적인 양식이다. 내부는 주로 회반죽으로 덮인 3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본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요르 거리. 필자 제공

어느덧 해가 저물 무렵, 팔렌시아의 마요르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스페인 북부의 4월 저녁 공기는 제법 서늘했지만, 한국인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를 직접 탐험하고 소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벅차올랐다. 화려함보다는 깊은 역사와 고요한 품격으로 기억되는 도시, 팔렌시아는 그렇게 또 하나의 특별한 스페인으로 남았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