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 코앞 두고 본격 선거운동 AI 정책만 난무… 기후공약 실종 정당도 탄소중립 구체 목표 부재 시민 체감형 기후정책 노력해야
6월3일 지방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투표장에 가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장 내가 사는 경기 시흥은 시장의 무투표 당선이 사실상 정해졌다. 시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7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무투표 선거구만 307곳이며 최소 504명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504명이 무투표로 당선되는 선거가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거운동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출퇴근길에 후보들이 보이고, 이름도 들린다. 그러나 정작 공약이 안 보인다. 일단 인공지능(AI) 공약만 보인다. 모든 후보가 AI로 지역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AI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겠단다. 그런데 후보 이름을 가리고 공약만 나란히 놓으면 누구의 공약인지 분간이 안 된다.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온 후보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기후공약은 어떨까? 기후정치바람이 이달 초인 지난 7일 국회에서 시도지사 후보들의 기후공약을 평가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후보들의 기후공약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는지, 실제 실행계획을 갖춘 정책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임기가 끝나는 2030년이 탄소중립 목표의 중간 점검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공약 평가 결과는 씁쓸했다. 원내정당과 광역시도 후보를 낸 정당 등 7곳의 10대 정책을 분석한 결과, 탄소중립 등 기후대응 목표를 제시한 정당은 진보당이 유일했다. 시민의 삶과 맞닿은 생활 기반 기후정책도 비어 있었다.
공약 실종은 개별 후보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당시 토론회에는 여러 정당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쪽 관계자는 기후정책은 중앙정부인지 지방정부의 사무인지 모호한 분야가 많아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건씩 정책 현안이 쏟아지고, 상반된 정책도 있어 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을 예로 들었다. 그는 서울이 에너지 자립을 이루려면 북한산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수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장 후보라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즉 서울시민이 전기요금을 더 내는 방안을 당당히 공약으로 내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이날 토론회에 아예 불참석 의사를 밝혀, 논의 자체가 전달될 기회도 없었다.
토론회 이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후보들에게 기후공약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는다.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끝내 안 보낸 곳이 많았다. 비슷하게 질문지를 전달한 기자들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내게 토로했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은 내부 어려움을 호소하며 개별 후보들의 공약이 나오면 그걸로 평가해달라고 했다. 민주당은 각 캠프 관계자가 국회의원실로 연락하라고 했다. 그런데 해당 의원실은 이걸 왜 의원에게 묻느냐고 되물었다. 소위 민감하다는 이슈로 기후공약을 만들지 않겠다는 곳도 있었다. 기후공약 여부를 물었을 뿐인데, 국가기밀사항이라도 묻는 줄 알았다.
망가진 정당정치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인 몇몇 지역에서 후보는 굳이 공약을 다듬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경쟁이 없으니 공약도 사라진다. 지방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라, 정당정치의 중간평가로 소비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국회 토론회에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날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시민들은 이미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예전 유권자의 여론을 머릿속에 탑재한 채, 세상이 두세 발 앞서 나가는 걸 모르고 있다. 시민들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권을 비롯한 모두가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공약이 실종된 상황. 그러므로 시민들은 각 후보에게 공약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온 공약을 따져보고, 당선 이후에도 이행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번거롭지만 그게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