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전쟁으로 잠시 멈췄던 동아시아와 중남미에 대한 개입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두 지역 모두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으로 향후 미국과 해당 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외교적 긴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과 관련해 라이칭더 대만 총통과 통화할 계획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와 얘기할 것”이라며 “대만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시점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 통화가 이뤄지면 미·중 간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 의회가 지난 1월 대만에 대한 140억달러(약 21조원) 규모 무기 패키지 판매를 사전 승인했음에도 계약 체결을 보류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무기를 팔 수도, 안 팔 수도 있다”며 대중국 협상 카드로 흔들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무기 판매는 중국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중국 대만 지역과 공식 왕래하는 것과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대만 문제를 신중히 처리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기 전까지 중국이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의 방문을 승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 대만 총통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12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 당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한 바 있는데, 당선인 신분으로 이뤄진 통화였음에도 중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이에 따라 이번 발언은 시 주석을 겨냥한 압박 차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 후 곧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초청해 ‘개별 국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러 회담과 관련해 “나는 둘 다와 잘 지낸다”고 했지만, 라이 총통과의 소통을 언급하며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 외교부는 “라이 총통은 대만해협의 안정적 현상 유지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하게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남미에서는 쿠바의 ‘혁명 영웅’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미 법무부의 기소는 1996년 미국 마이애미 기반 쿠바 망명 단체인 ‘구출의 형제들’이 운용하던 항공기 2대를 쿠바군이 격추해 탑승자 4명이 사망한 사건에 관여한 혐의에 대한 것이다. 연방 검찰은 살인, 미국인들 살해 음모, 항공기 파괴 등의 혐의를 기소장에 적시했다. 법무부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카스트로 전 대통령의 형량이 최대 사형 또는 종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기소에 대해 “쿠바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군사적 긴장 고조는 없을 것이며, 그렇게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카스트로 전 대통령은 형인 피델 카스트로, 친구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피델이 건강 악화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고, 퇴임 후 나이가 95세에 이른 현재까지도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쿠바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지속해온 트럼프 행정부는 쿠바의 실권자에 대한 기소를 통해 압박 강도를 한층 높였다. 쿠바 정권의 실질적 리더를 ‘범죄자화’해 지난 1월 정권 교체에 성공한 베네수엘라와 같은 효과를 노리겠다는 의도도 읽을 수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미국이 1996년 사건을 왜곡·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번 조치를 두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정치적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쿠바에 대한 무모한 군사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꾸며내고 있는 명분을 강화하려는 목적일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 같은 군사 개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