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김재익 장학 기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외교가 원로들 사이에 1983년은 ‘악몽의 해’로 기억된다. 그해 9월1일 미국 뉴욕을 떠나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추락해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소련(현 러시아)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았다. 국제사회의 소련 규탄을 이끌어내고자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1개월여 뒤인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당시 이 나라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순직했다. 전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폭거였다. 어느 외교관은 훗날 회고록에서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이 지난번 대한항공 사건 때와 똑같은 교섭을 되풀이해야만 했다”며 “소련 대신 북한이 규탄의 대상이 된 것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김재익(1938∼1983) 전 청와대 경제수석. 세계일보 자료사진

아웅산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6명은 하나같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실력을 갖춘 대한민국 대표 인재였다.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외교 분야에서 한국의 고도 성장을 견인한 주역들이기도 했다. 당시 나이가 4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까지였으니 테러만 없었다면 그 뒤로도 10∼20년은 활동하며 한국 발전에 더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김재익 수석은 순직 당시 44세에 불과했다. 전두환 신군부 집권 후 청와대에 들어가 3년 1개월 동안 경제수석으로 일하며 1980년대 한국 경제의 구조 전환을 진두지휘했다. 민생 안정을 위해 물가를 잡고 정보기술(IT) 산업 도입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육성한 것이 그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김 수석에 대한 전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다. 장군 출신으로 경제는 문외한이던 전 대통령이 사석에서 그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말 그대로 전권을 부여할 뜻을 밝힌 일화는 유명하다. 둘 사이엔 부인이 동명이인(이순자)이란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름 가운데 ‘순’의 한자는 서로 다르다.

이순자(1938∼2026) 전 숙명여대 명예교수. 사진은 2010년 남편 이름을 딴 ‘김재익 장학 기금’ 조성을 위해 서울대에 20억원을 쾌척할 당시의 모습. 서울대 제공

김재익 수석의 부인 이순자(李淳子) 전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21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향년 88세. 김 수석과는 1962년 결혼했으니 두 사람이 부부로 산 기간은 20년이 조금 넘는다. 이 전 교수는 남편과 함께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유학할 때 도서관학을 공부했고 귀국 후 해당 학문 분야를 ‘문헌정보학’으로 재정립했다. 2010년 서울대에 20억원을 쾌척해 ‘김재익 장학 기금’을 만들었다. 2013년 출간된 책 ‘김재익 평전’을 통해 “이제 저도 남편 곁으로 갈 날을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요”라며 “윤회설을 믿는다면 한 번쯤 다시 그 사람(남편)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해로를 해 보았으면 하고 웃지요”라는 소회를 밝혔다. 그 꿈이 꼭 이뤄지길 소망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