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잔해뿐이던 한국, 이젠 샌프란시스코처럼 변해”

96세 美 6·25 참전 노병이 기억하는 한국
“보병인데 탱크 운전병으로 차출돼 고생”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가 현재 96세인 6·25 전쟁 참전용사의 생애를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이 노병(老兵)은 “잔해뿐이던 곳이 미국 대도시처럼 바뀌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6·25 전쟁 참전용사인 스탠리 마르티네즈(96) 전 미국 육군 하사. 미 전쟁부 제공

22일(현지시간) 전쟁부에 따르면 스탠리 마르티네즈 전 육군 하사는 현재 캘리포니아주(州) 엘센트로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1930년대 뉴멕시코주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무려 10남매 중 한 명이었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은 마르티네즈는 아버지 손에 자랐다. 그의 부친은 평생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열 명의 자녀를 모두 키웠다.

 

마르티네즈는 1947년 지금 살고 있는 엘센트로로 이사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로 미국은 아직 징병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마르티네즈도 징집 영장을 받았다. 그에겐 2차대전 당시 독일군과의 교전 도중 전사한 형이 있었다. 마르티네즈는 ‘조국의 부름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육군에 입대했다.

 

16주에 걸쳐 군사 훈련을 받은 마르티네즈는 제7보병사단에 배속돼 일본을 거쳐 한국 부산에 도착했다. 그의 병과는 보병이었지만 뜻밖에도 전차(탱크) 운전사로 차출됐다. 어느 장교가 마르티네즈에게 “트럭을 몰 수 있으냐”고 물은 뒤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선 즉석에서 그렇게 조치했다.

 

탱크 승무원 생활은 고됐다. 잠도 탱크 안에서 자야 했고 끼니는 거의 대부분 전투식량(시레이션)으로 때웠다. 따뜻한 음식을 먹을 기회는 한 달에 고작 두 번 주어졌다.

 

한국 복무 도중인 1951년 가을 마르티네즈는 미국으로 돌아가 텍사스주에 주둔한 부대로 재배치됐다. 텍사스로 향하기 전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 앨리스와 결혼했다. 올해 부부는 결혼 75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스탠리 마르티네즈(96) 전 미국 육군 하사가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전우들과 촬영한 사진을 미 전쟁부 관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미 전쟁부 제공

몇 해 전 마르티네즈는 한국 정부 주선으로 전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 해외 참전용사 한국 재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그는 “온통 잔해로 가득찬 마을들이 모두 대도시가 되었다”며 “샌프란시코와 비슷해졌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가 소속했던 미 육군 7사단은 1971년까지 한반도에 주둔하며 한국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미 동부 워싱턴주에 있다. 마르티네즈는 7사단 후배 장병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느냐는 전쟁부 측의 질문에 “(징병제가 있던 시절처럼) 모두가 몇 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에서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훈련이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