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HPV 국가접종… 사회적 감염관리 확장 [건강+]

공중보건 패러다임 변화 첫 발

남녀 모두 감염 바이러스 불구
여성 위주 대비, 男 접종률 0%

男, 전파율 여성보다 1.6배 높아
접종 통해 자궁경부암 예방 기여

지원 백신 4가… 9가 확대 의견
안정성 논란엔 전문가 “문제없어”

정부가 이달부터 만 12세 남성 청소년을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국가예방접종(NIP)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10년간 여성 위주로 운영돼 온 HPV 예방 체계에 변화가 시작됐다. HPV는 남녀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남성에게도 항문암, 음경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유발하고 타인에게 전파될 수 있지만 남성 접종률은 사실상 0%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남성 청소년 HPV 국가예방접종 도입이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에 머물렀던 HPV 접종의 의미를 개인 예방을 넘어 사회 전체의 감염 부담을 낮추는 공중보건 전략으로 확장하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한다.

정부가 이달부터 만 12세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국가예방접종 지원을 시작했다. 사진은 의료진이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성 감염 부담 큰데 접종률은 0%대

HPV는 대부분 자연 소멸하지만 지속 감염되거나 체내에 남으면 자궁경부암, 질암, 구인두암, 항문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연령 증가에 따라 감염률이 낮아지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20∼40대까지 감염률이 40∼50%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없어도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만큼, 남성 접종은 전파 차단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HPV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주로 알려지면서 남성 접종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2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내 HPV 신고 건수는 2020년 1만945건에서 2024년 1만4534건으로 약 32.8% 증가했다. 특히 남성 신고 건수는 같은 기간 117건에서 214건으로 82.9% 늘었다.

아울러 2014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국내 남성 4만406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전체의 59%가 HPV DNA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HPV가 주원인인 생식기 사마귀의 경우에도 지난해 남성 환자(4만8017명)가 여성 환자(9600명)의 약 5배에 달했다.

그럼에도 남성 접종률은 극히 저조했다. 지난해 여성 청소년의 HPV 백신 1차 접종률이 86.2%에 달하는 반면, 2023년 기준 남성 청소년 접종률은 0.2%에 불과했다.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남성은 HPV를 무증상으로 장기 보유하며 전파율이 여성보다 1.6배 높다”고 말했다. 최민철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남성 접종은 본인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HPV 전파를 줄여 여성의 자궁경부암 예방에도 기여하는 집단면역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90%의 HPV 백신 접종률과 70%의 수검률을 목표로 한다면 퇴치 시점을 10년 더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HPV 남아 접종 지원은 그동안 여성 개인의 암 예방에 초점이 맞춰졌던 HPV 예방 정책을 남녀 모두의 감염 관리 체계로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국, 호주,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이 10여년 전부터 남녀 모두에게 접종하는 예방 전략을 채택해온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남성 접종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지원이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어릴수록 면역반응 유리… 12세 접종 적기

전문가들은 HPV 백신 접종의 적기로 만 11∼12세를 꼽는다. 어린 나이에 접종할수록 면역 체계가 백신에 민감하게 반응해 적은 횟수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성 접촉 이전 접종이 예방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전후는 중학교 진학 전 예방접종 이력을 점검하기 좋은 시기다.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학업 일정과 병원 방문 기피 등으로 접종 순응도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국가예방접종 대상 연령에 맞춰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지원 대상은 만 12세 남성 청소년으로, 2026년 기준 2014년생 남자 청소년이 해당한다. 이들은 HPV 백신을 6∼12개월 간격으로 총 2회 무료 접종받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만 12세는 남자아이들의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자, 초등학교 졸업 전 필요한 예방접종을 점검해야 하는 시기”라며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일본뇌염 불활성화백신 등과 함께 HPV 접종 여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원되는 백신은 4가 HPV 백신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더 많은 고위험 HPV 유형을 포함한 9가 백신으로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9가 백신은 4가 백신이 예방하는 HPV 6·11·16·18형에 더해 31·33·45·52·58형을 추가로 포함한다. 김 교수는 “미국은 9가 백신 도입 이후 2·4가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며 “한국도 9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도 “국내에서는 HPV 16, 52, 58형 감염이 흔한 만큼, 9가 백신의 추가접종은 고위험 유형 예방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접종 대상이 확대되면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2013년 일본에서 HPV 백신 접종 후 일부 여학생에게 만성 통증, 보행 장애, 경련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 증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내에서도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HPV 백신이 수많은 접종 사례를 통해 안전성이 확인된 백신이라고 설명한다. 최 교수는 “일본 정부와 WHO 국제백신안전성자문위원회가 대대적인 역학 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HPV 백신이 매우 안전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100개국 이상에서 국가예방접종 사업으로 채택하고 있고 수억 건 이상의 접종 데이터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만 접종 부위 통증, 부종, 가벼운 어지럼증 등은 나타날 수 있다. 접종 후 15∼30분간 의료기관에 머물며 급성 알레르기 반응 여부를 관찰하면 대부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