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부터 만 12세 남성 청소년을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국가예방접종(NIP)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10년간 여성 위주로 운영돼 온 HPV 예방 체계에 변화가 시작됐다. HPV는 남녀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남성에게도 항문암, 음경암, 생식기 사마귀 등을 유발하고 타인에게 전파될 수 있지만 남성 접종률은 사실상 0%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남성 청소년 HPV 국가예방접종 도입이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에 머물렀던 HPV 접종의 의미를 개인 예방을 넘어 사회 전체의 감염 부담을 낮추는 공중보건 전략으로 확장하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한다.
◆남성 감염 부담 큰데 접종률은 0%대
HPV는 대부분 자연 소멸하지만 지속 감염되거나 체내에 남으면 자궁경부암, 질암, 구인두암, 항문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연령 증가에 따라 감염률이 낮아지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20∼40대까지 감염률이 40∼50%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없어도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만큼, 남성 접종은 전파 차단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HPV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주로 알려지면서 남성 접종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어릴수록 면역반응 유리… 12세 접종 적기
전문가들은 HPV 백신 접종의 적기로 만 11∼12세를 꼽는다. 어린 나이에 접종할수록 면역 체계가 백신에 민감하게 반응해 적은 횟수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성 접촉 이전 접종이 예방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전후는 중학교 진학 전 예방접종 이력을 점검하기 좋은 시기다.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학업 일정과 병원 방문 기피 등으로 접종 순응도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국가예방접종 대상 연령에 맞춰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지원 대상은 만 12세 남성 청소년으로, 2026년 기준 2014년생 남자 청소년이 해당한다. 이들은 HPV 백신을 6∼12개월 간격으로 총 2회 무료 접종받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만 12세는 남자아이들의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자, 초등학교 졸업 전 필요한 예방접종을 점검해야 하는 시기”라며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 일본뇌염 불활성화백신 등과 함께 HPV 접종 여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원되는 백신은 4가 HPV 백신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더 많은 고위험 HPV 유형을 포함한 9가 백신으로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9가 백신은 4가 백신이 예방하는 HPV 6·11·16·18형에 더해 31·33·45·52·58형을 추가로 포함한다. 김 교수는 “미국은 9가 백신 도입 이후 2·4가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며 “한국도 9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도 “국내에서는 HPV 16, 52, 58형 감염이 흔한 만큼, 9가 백신의 추가접종은 고위험 유형 예방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접종 대상이 확대되면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2013년 일본에서 HPV 백신 접종 후 일부 여학생에게 만성 통증, 보행 장애, 경련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 증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내에서도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HPV 백신이 수많은 접종 사례를 통해 안전성이 확인된 백신이라고 설명한다. 최 교수는 “일본 정부와 WHO 국제백신안전성자문위원회가 대대적인 역학 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HPV 백신이 매우 안전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100개국 이상에서 국가예방접종 사업으로 채택하고 있고 수억 건 이상의 접종 데이터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만 접종 부위 통증, 부종, 가벼운 어지럼증 등은 나타날 수 있다. 접종 후 15∼30분간 의료기관에 머물며 급성 알레르기 반응 여부를 관찰하면 대부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