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프랑스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라는 국제기구 설립 추진을 공식 제안했다. 앞선 두 차례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더 많은 석탄·철광석을 차지하려는 각국의 욕심’으로 규정한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이 이들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면 분쟁은 사라질 것”이란 논리를 폈다.
독일 자르에 풍부한 석탄과 프랑스 로렌에 대거 매장된 철광석을 둘 다 확보하려는 독일·프랑스의 치열한 경쟁이 결국 비극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이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1952년 정식으로 출범한 ECSC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당시 서독)·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6개국이 참여했다.
ECSC 설립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프랑스는 이웃 나라 영국에도 초청장을 보냈다. 당시 영국은 노동당 대표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집권 중이었다. ‘ECSC라는 정체 불명의 기구가 자칫 영국 석탄 산업을 망칠 수 있다’고 여긴 애틀리는 협의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야당인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 대표는 애틀리를 맹비난하며 “ECSC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유럽의 국제회의에는 영국 대표단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늘날 노동당이 ‘영국도 통합 유럽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반면 보수당은 ‘영국은 유럽 대륙을 넘어선 글로벌 국가’란 주장을 펴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독일·프랑스가 주도한 ECSC는 비슷한 성격의 유럽경제공동체(EEC)와 합쳐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거듭났다. 애초 EEC 및 EC에 부정적이었던 영국은 생각을 바꿔 EC 가입을 희망하게 됐다. EC 회원국들의 빠른 경제 성장과 비교하면 영국의 성적표는 그리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를 드골 장군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1959년 1월∼1969년 4월) 프랑스는 영국이 EC 회원국이 되는 것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반미주의자인 드골은 영국을 ‘미국의 앞잡이’로 여겼고, 그래서 영국의 EC 가입 신청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영국이 EC의 일원이 된 것은 드골이 물러난 뒤인 1973년의 일이다.
하나 ‘늦깎이’ 영국은 철저하게 독일·프랑스 중심으로 짜여진 EC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는 1993년 EC가 유럽연합(EU)으로 확대·개편된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강대국을 자처하는 영국이 2016년 국민 투표를 거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2024년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요즘 심상치 않다. 노동당의 지방선거 참패 후 스타머 사퇴를 촉구하며 차기 총리 및 당 대표 자리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EU 재가입 추진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각에선 오는 2027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큰 극우 세력이 과거 드골처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우려를 표했다. 정말 역사는 돌고 또 도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