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일 만에 출구 찾은 이란전… ‘핵·호르무즈’가 막판 암초

美·이란 양해각서 윤곽

이란 ‘우라늄 포기’ 구두로만 전달
핵프로그램 협상에서 추후 논의
호르무즈 통제권도 여전히 이견
트럼프, 아랍국 지도자들과 통화
“합의·공격 반반” 군사적 압박도

개전 80여일 만에 미국과 이란 양국이 가장 구체적인 종전 협상 타결 지점에 근접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협상이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고, 이란 역시 협상에서 의견 차이가 좁혀졌음을 인정하며 대화의 진전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협상의 핵심 쟁점인 핵무기 보유에 대해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다만 이란의 농축 우라늄 처리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 등 핵심 난제로 인해 최종 타결과 전쟁 재개 가능성이 여전히 병존한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미 매체 액시오스가 입수해 보도한 양해각서(MOU) 초안에 따르면 △이란은 60일 휴전 기간 호르무즈해협을 통행료 없이 개방하고 기뢰 제거에 동의한다 △미국은 대이란 봉쇄를 해제하고 석유 수출이 가능하도록 제재를 면제한다 △이란 주변에 주둔 중인 미군은 최종 합의가 이뤄진 뒤 철수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또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고농축 우라늄 폐기 협상 참여 등 내용이 담겼다. 이란은 중재국을 통해 미국에 우라늄 농축 중단, 핵물질 포기 등의 안건을 놓고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지에 대해 구두로 입장을 전달했다고 소식통들은 밝혔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란이 미국의 고농축 우라늄 포기 요구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란은 60% 농도의 고농축 우라늄 약 440㎏을 보유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이 비축분을 미국이 확보할 것이라고 수차례 공언해 왔다. 다만 당국자들은 이란의 우라늄 비축분 처리에 관한 세부 내용은 합의되지 않았으며 향후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에서 이 부분을 다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란 측에서도 MOU 초안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이 제시한 14개 항의 요구에 핵, 동결자산 해제 등 의제가 모두 담겼으며, 양측이 종전 MOU에 합의할 경우 핵 사안을 논의하기까지 30일 혹은 60일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내용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란 매체들은 초안에 상호 군사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협상 기간 이란에 대한 미국의 석유·석유화학 수출 제재를 유예하고, 잠정 합의 이행 첫 단계로 이란의 해외 동결자금 일부를 해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동결자산 해제 요구에는 협상 초기 최소한의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 미국이 비교적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고 정치적 부담도 작은 조처를 우선 확보하려는 계산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협상이 급진전된 배경에는 중재국 파키스탄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군 총사령관은 전날부터 이틀간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해 대통령, 의회 의장 등 이란 지도부를 연쇄 면담했다. 이어 이란 측의 ‘최신 제안’을 직접 받아 미국 측에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견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협상의 물꼬가 트인 것으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아랍 국가들의 외교적 압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백악관에 머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파키스탄 등 이란 주변국 지도자와 연쇄 통화를 했다.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 종전 제안 수락을 촉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핵물질 관련 합의는 고도의 기술적 검증과 사찰을 통한 검토와 확인이 필요한 만큼 60일 내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호르무즈해협 갈등도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란 파르스통신은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관리하에 남게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란 타스님뉴스도 “MOU는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수를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의미”라며 “이란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협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광장에서 6일 열린 친정부 집회에서 한 남성이 호르무즈 해협의 그래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술이 꿰매진 대형 광고판 앞에서 이란 국기들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상호 불신도 남아 있다. 미국은 여전히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재개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액시오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좋은 합의를 할지, 완전히 박살 낼지 가능성은 확실한 50 대 50”이라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공개한 메시지에서 “미국의 협상 전례를 고려해 각별히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면서 “미국은 반복적으로 약속을 위반하고 이란 고위급을 암살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공화당의 대(對)이란 강경파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연방상원 군사위원장인 로저 위커 의원은 23일 엑스(X)를 통해 “(이란과 협상에 임한다면)‘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달성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 때 국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 전 장관도 “(이란과의 협상은)결코 ‘미국 우선’이 아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