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과 강남에 몰리던 유통업계의 시선이 부산, 대구, 광주, 제주로 옮겨가고 있다. 예전 지방 점포가 지역 소비를 받치는 보완재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과 지역 상권을 동시에 잡는 전략 거점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2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76만명을 넘어섰다.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다. 특히 지방공항 입국은 전년 대비 49.7% 증가했고, 부산·제주 등 크루즈 기항지 증가도 지역 경제 활성화 요인으로 꼽혔다.
유통업계가 비수도권 투자를 늘리는 배경이다. 과거에는 서울 주요 상권에 대형 점포를 세우는 것이 성장 공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 거점 점포가 관광객 유입, 지역 소비, 고용 창출까지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백화점업계에서는 이미 비수도권 핵심 점포의 존재감이 커졌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대구점, 대전 아트앤사이언스점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점포로 자리 잡았다. 어패럴뉴스가 집계한 2025년 국내 5대 백화점 65개 점포 매출 순위에서도 신세계는 강남점뿐 아니라 센텀시티점, 대구점, 아트앤사이언스점 등 대형 점포 실적이 전체 성장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백화점도 지역 투자를 키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27년 부산 에코델타시티에 ‘더현대 부산’을 열고, 2028년 경북 경산에 프리미엄아울렛, 2029년 광주에는 ‘더현대 광주’를 출점할 계획이다.
특히 더현대 부산은 연면적 약 20만㎡ 규모로 추진된다. 현대백화점은 이 점포를 백화점과 아울렛, 쇼핑몰의 경계를 섞은 ‘더현대 2.0’ 모델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헬스앤뷰티 업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올해 비수도권 신규 매장 출점과 리뉴얼, 물류 인프라 강화 등에 1238억원을 투입한다. 2023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매장 구축 관련 투자는 전년보다 36% 늘렸다.
올리브영은 올해 신규 출점 또는 리뉴얼 예정인 100평 이상 대형 매장 78곳 가운데 43곳을 비수도권에 배치한다. 부산·제주·경주 등 관광 거점에는 글로벌 특화 매장을, 충청·호남·영남권에는 대형 타운 매장을 집중 배치할 계획이다.
고용 효과도 함께 노린다. 올리브영은 올해 비수도권에서 약 60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지역 대형 매장이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청년 일자리 거점 역할까지 맡는 셈이다.
이커머스 업계도 비수도권 물류망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쿠팡은 광주, 대전, 김해, 양산 등 주요 거점 물류센터를 확대하며 지방 물류 인프라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빠른 배송 경쟁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 단위로 확장되면서 지역 물류센터는 고용과 배송 품질을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시설이 됐다.
패션업계도 오프라인 거점을 넓히고 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지난달 광주광역시에 첫 매장을 열며 호남권에 진출했다. 온라인 구매 데이터를 통해 지역 수요를 확인한 뒤 오프라인 접점을 넓히는 방식이다.
유통업계의 지역 투자는 단순 출점 경쟁만은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밖으로 움직이고, 지역 소비자도 더 큰 쇼핑 경험을 요구하면서 지방 핵심 상권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지역 점포는 본사 전략에서 뒤로 밀린 매장이 아니라, 관광과 소비, 고용을 함께 끌어오는 거점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앞으로 유통업계의 성장 경쟁은 서울 중심 상권뿐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 제주 같은 지역 랜드마크에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