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지난 24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화에서는 각자의 상처와 무가치함을 버텨낸 인물들이 마침내 각자의 안온함에 도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드라마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을 선보인 박해영 작가의 신작으로, 그의 고유한 감각과 문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모자무싸’라는 제목 그대로, 인물들의 무가치감과 열패감을 전면에 내세우며 한 치도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따른 불편함마저 서사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강렬한 공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박해영 월드를 확장하는 동시에 스스로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열패감·무가치함에 대한 정교한 성찰
그럼에도 ‘모자무싸’가 끝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그리고 대사와 상황의 힘 덕분이다. 특히 구교환과 오정세(박경세 역)를 비롯한 배우들은 대사에 스며 있는 불안과 분노, 허무와 애착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화면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인물의 얼굴과 공간의 분위기를 오래 응시하는 쪽을 택한다. 이 때문에 전개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그 느린 리듬 속에서 감정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묘한 매력을 체감하게 된다.
◆공감이 쉽지 않은 설정과 인물들
다만 ‘모자무싸’의 이런 장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정이 간다’는 대중 드라마의 기본 전제를 의도적으로 비껴간 설정은 대중이 시청 행위 자체를 일종의 ‘도전’으로 느끼게 만든다.
초반 황동만은 자기 연민과 분노에 갇혀 주변을 상처 입히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드라마는 그를 서둘러 변호하거나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함’은 박 작가의 스타일이지만, 빠르고 명료한 서사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에게는 쉽게 ‘피곤한 드라마’로 인식되기도 했다.
여기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려는 대사는 종종 작가의 문장감이 지나치게 앞세워져 배우의 입을 빌린 메시지 전달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는 듯한 대사가 누적되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 셈이다.
주요 인물들을 영화사·제작사 등 이른바 ‘콘텐츠 업계’ 종사자로 설정한 선택도 ‘무가치함’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다루기에는 공감대와 설득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동만·박경세 등이 느끼는 무가치함은 “작품을 찍느냐”, “흥행하느냐”, “영화제에서 상을 받느냐” 같은 창작·연예계 특유의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무가치감은 연봉, 조직 내 평가, 고용 안정, 가족 부양, 시험·취업 실패처럼 훨씬 생활에 밀착된 지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 때문에 드라마의 정서와 현실의 체감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콘텐츠 업계 이야기가 박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영역일 수는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세계”라며 “‘무가치함과 극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더 넓게 전달하고자 했다면 보다 대중적인 직업군으로 확장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모자무싸’는 가볍게 재미만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따라간 시청자에게 드라마가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신이 느끼는 무가치감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그것과 함께 싸우고 있다.” 이 한 문장이,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이자 존재 이유로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