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중서부 내륙에 위치한 앨버타주(州)는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주, 몬트리올이 있는 퀘벡주,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비교해 그렇다는 뜻이다. 면적은 66만1848㎢로 남북한을 더한 한반도 넓이의 3배에 육박한다. 그러나 인구는 한국의 부산과 울산을 합친 것과 비슷한 460만여명에 불과하다. 주 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캘거리는 198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겨울 스포츠가 발전하지 않았던 한국은 30명 가까운 선수들을 출전시켰으나 메달은 따내지 못했다. 한국의 동계 올림픽 첫 메달은 4년 뒤인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에서 비로소 나왔다.
17∼18세기 캐나다에선 유럽의 영국 및 프랑스 세력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세계 최강국이던 두 나라 간 패권 다툼의 일환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7년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난 1763년 캐나다 전체 지배권이 영국에 넘어갔다. 일찌감치 프랑스인들이 정착했던 오늘날의 퀘벡주는 이후 영어와 영국 문화가 압도적인 캐나다 안에서 마치 고립된 섬처럼 남게 되었다. 다만 지배자인 영국이 프랑스계 캐나다 주민들에게 관대한 정책을 펴며 그들은 예전과 같이 프랑스어를 쓰고 또 프랑스 문화를 지키며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퀘벡이 전적으로 캐나다에 순응한 것은 아니다. 1980년과 1995년 퀘벡주에선 캐나다 연방에 계속 남을 것인지, 아니면 연방을 탈퇴하고 독립국이 될 것인지 묻는 내용의 주민 투표가 실시됐다. 두 차례 모두 주민 과반이 ‘독립 반대’에 표를 던져 연방 잔류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후 퀘벡 분리주의 운동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앨버타주에서 이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풍부한 지역인 앨버타주는 오래전부터 에너지 정책 등 여러 이슈를 놓고 오타와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일각에선 ‘캐나다를 벗어나 미국에 합류하자’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다.
급기야 다니엘 스미스 앨버타주 총리가 지난 22일 주민 투표 실시 방침을 밝혔다. 오는 10월 투표를 통해 주민들에게 앨버타가 캐나다 연방에 계속 잔류할지, 아니면 연방을 탈퇴할지 찬반을 묻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주민 투표는 아니라는 것이 스미스 주총리의 설명이다. 분리·독립 절차 개시에 관한 의견 수렴 절차일 뿐이란 뜻이다. 2025년 1월 취임과 동시에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쨰 주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이번 기회에 앨버타주가 미국 품에 안기길 고대하는 모양새다. 땅덩이가 큰 나라들이 대체로 그렇듯 영토 면적 세계 2위인 캐나다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듯하다.